작품 상세 설명
작품에 대한 김인승의 태도는 정확한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대상을 면밀하고 정확하게 관찰한 후, 주제를 어떻게 화면 위에 작품화할 것인가를 고심했다. 따라서 그는 주제의 표현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게 되었는데, 그 재현은 결국 객관적인 진실보다 주관을 충분히 가미한 새로운 리얼리즘의 표현이었다. 대상에 대한 관찰과 아울러 김인승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뛰어난 소묘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구성에서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김인승은 작품에 완벽성을 기했다. 굉장히 철두철미했으며 구성, 터치 등 모든 조형적 요소를 완전하게 이해해 나갔다. 김인승의 작품 세계 저변에 깔려있는 바탕은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서양의 사실적인 미술기법을 이용하였으며 아주 모범적인 화풍에 기초하고 있다. 초기에는 여인들의 모습을 주로 그렸으며 이국적인 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주를 이루었고 완벽한 표현과 마무리를 특징으로 한다. 그의 시리즈는 말년의 경향이라 할 수 있는데, 역시 장미라는 물체를 꿰뚫는 정확한 관찰력과 그것을 부각시키는 수준 높은 솜씨에 의해 작품이 형성되고 있다. 〈들장미〉(1964), 〈장미〉(1973), 〈백장미〉(1985) 등 장미와 모란을 주로 그렸다. '장미의 화가'라는 별칭은 이 같은 후기 작품 경향에서 얻어진 것이다. 초기의 나부시대든, 그 후의 풍경 내지 정물시대건 간에 자연을 보는 정확한 관찰과 그것을 박진감 있게 다루는 뛰어난 기술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작가의 명성처럼 진하고 붉은 장미가 싱그럽게 활짝 피어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작가 소개
1910년 경기도 개성 출생으로 호는 지연(智淵)이다.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출신의 한국 서양화 1세대 화가로 구상적인 사실주의를 추구하며 한국 아카데미즘 미술의 전통을 확립한 작가이다. 한국 근대 조각의 1세대 작가인 김경승이 그의 동생이다.
개성 제일보통학교를 거처 1925년 송도 고등상업학교를 입학한 그는 1929년 동아일보사 주최 전조선학생미술전에 「임진강철교」, 「뒷동산 풍경」이 입선될 만큼 이른 나이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1932년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学校] 서양화과를 수료하고 같은 해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이던 1936년 일본 문부성미술전람회(文部省美術展覧会)에서 「나부(裸婦)」로 입선하고 광풍회(光風會) 전람회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1937년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 참가한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부」로 첫 특선을 차지했는데 제19회까지 연속 4회의 특선을 수상하면서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 때 서양화 분야에서 추천작가가 된 심형구, 이인성과 함께 ‘추천 작가 3인전(三人展)’을 가졌다.
1943년에는 심형구, 박영선, 김만형, 손응성, 이봉상, 임응구 등과 함께 단광회(丹光會)를 조직하여 친일미술활동에 가담했다. 그해 8월 조선인 징병제가 시행되자 이를 기념하는 기록화인 「조선징병제실시」를 합작으로 제작했으며 반도총후미술전의 추천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개성여자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다가 1947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과 교수로 부임하여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추천작가로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1955년 대한미술협회 부위원장, 1957년 예술원 회원, 1960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면서 서양화단의 구상 계열을 주도하는 작가로 활동했다. 1974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작품활동을 계속해 오다가 2001년에 사망했다.
1963년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았고 1965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3·1 문화상을 수상하고, 1969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김인승은 정확한 관찰력과 뛰어난 데생력을 바탕으로 많은 인물화를 제작했던 작가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는 장미를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제작하여 「장미 화가」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주로 여인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김인승은 대상표현에 있어 사실적으로 접근하려는 자세를 지녔으며 회화의 본질은 재료를 극복하여 사실적인 표현을 이루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의 대상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동적인 것이 아니라 포즈를 취한 인물이나 정물이 대부분이다. 그가 그린 여인들은 대개 도시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앉아 있는데, 이는 많은 화가들이 시골의 정경과 인물을 주로 다루어 향토적인 느낌을 주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작가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형적인 도시적 여인좌상은 여러 젊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한 때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풍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