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상세 설명
우리는 가을을 ‘수확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이 계절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 활동을 하는 화가가 바로 이상열 작가다.
“내가 나무를 그릴 때 나는 나무를 그린다기보다 화폭 속에서 나무를 키운다. 내가 손끝으로 밀면 그때마다 나무가 가지를 뻗고 그 가지 끝에서 꽃을 피운다. 또 때로는 그 가지 끝에서 과일이 영글기도 한다. 나는 때로 노란 물감을 풀어 흘리고, 때로 붉은 물감을 풀어 흘린다. 나의 화폭 속에서 나무들이 그 물감을 자양분으로 삶을 키운다.”
- 작가의 말 中에서
추상회화에서는 대상의 재현보다 색과 형태, 텍스추어 등 조형어휘의 개발과 실험을 강조하기 때문에 조형요소들 혹은 그림을 어떻게 만들었나를 특별히 강조한다. 그럼에 반해 구상화는 실재의 재현 자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그것과는 다르다. 그런데 구상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과감히 추상화의 발상을 끌어들이는 화가가 있다.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농원풍경을 그리는 ‘과수(果樹)의 화가’ 이상열이 그 주인공이다. 이상열의 화면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두드리고 굴리며 깨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소란스러운 실험실’을 방불케 한다. 바르고 던지듯 찍어 바르고 으깨고 휘젓는 등 격정적인 몸짓들이 화면을 휩쓸며 지나간다. 마티에르가 봉긋 솟아오르고 필선들이 분주히 들락거리면서 화면 표정도 약간 상기된다. 이상열은 이처럼 화면을 수식하기보다 그것을 구성하는 데에 관심을 집중한다. 작품내용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통해 전달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수법 개발은 필수적이다. 이상열은 그런 요구를 너끈히 충족시킨다. 그에게 조형언어는 내용을 전달하는 통로가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의 풍요를 담는 요긴한 수단이 된다. 그의 작품에서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서 느끼는 차가운 감정이나 세련된 디지털 칼라의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작가는 차가움, 간편함, 가벼움을 거부하고 불편함, 무거움, 힘겨움을 감수한다. 그의 그림은 순전히 아날로그적 방식을 기반으로 이를 통한 ‘회화의 본질적 계승 발전’(작가의 말)을 도모하고자 한다.
작가 소개
구상화에 바탕 하면서도 과감히 추상화의 발상을 끌어들이는 화가가 있다.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농원풍경을 그리는 ‘과수(果樹)의 화가’ 이상열이 그 주인공이다. 이상열의 화면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두드리고 굴리며 깨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소란스러운 실험실’을 방불케 한다. 바르고 던지듯 찍어 바르고 으깨고 휘젓는 등 격정적인 몸짓들이 화면을 휩쓸며 지나간다. 마티에르가 봉긋 솟아오르고 필선들이 분주히 들락거리면서 화면 표정도 약간 상기된다. 이상열 작가는 이처럼 화면을 수식하기보다 그것을 구성하는 데에 관심을 집중한다. 작품내용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통해 전달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수법 개발은 필수적이다. 작가는 단순히 실재의 나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캔버스에 나무를 키운다. 물론 그가 키우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나무라는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농부의 마음으로 밭을 갈고 비료를 주고 씨를 심고 해충이 들지 않도록 잘 간수하고 돌본다. 사실 이런 과정은 주의 깊은 화가라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농사일을 대충대충 할 수 없듯이 그림도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애정과 세심한 돌봄을 요한다. 이상열 작가는 농부의 애틋한 마음으로 그림속의 나무를 키우고 꽃을 가꾸며 잔디를 돌본다. 마음이 닿는 곳에 시선이 쏠리듯이 그림을 대하는 자세가 각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꽃들의 정원에 둘러싸여 있다. 화려한 꽃들만 피어있는 것이 아니라 풍요로운 열매도 맺고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피고 지는 꽃의 영화로움은 무상하지만 어떤 난관을 무릅쓰고 맺는 열매의 결실은 나무의 생애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나무에 달린 열매를 보며 우리는 무엇을 연상할까. 한철의 아름다움을 ‘꽃’이 웅변해준다면, 지속적인 아름다움은 ‘열매’가 웅변해준다. 열매는 뜨거운 뙤약볕과 세찬 비바람을 참고 이뤄낸, 다시 말해 오랜 역경과 난관을 꿋꿋하게 극복한 삶을 말해주는 동시에 감상자에게는 ‘나눔의 정신’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