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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 김인승 智淵 金仁承Kim InSoong
1910 ~ 2001
근대·현대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 1932년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 서양화과 수료
- 일본 동경미술학교 졸업
-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명예 문학박사
- 기관 경력
- 1947년-1974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 1947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초대작가
- 1957년 대한미술협회 회장
- 1960년-1972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 1967년 국제조형미술협회 한국위원장
- 1969년 박대통령 부처 초상 제작
- 1969년-1983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고문
- 1970년 박대통령 부처 입상 제작
- 등 역임
- 전시
- 1936년-1939년, 일본 광풍회전
- 1939년-1996년, 개인전 다수
- 1949년-198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국립현대미술관
- 1952년, 한국 현대미술전
- 1953년, 제1회 현대미술작가 초대전, 부산 국립박물관
- 1967년, 국제미전, 상파울로
- ...
- 1987년, 한국 인물화전, 호암갤러리
-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작가 작품전, 대구, 강릉
- 1995년, 목우회 회원전, 서울시립미술관
- 1996년, 작고 원로 작가의 향기, 수목 화랑
- 1996년, `96 화랑미술제 한국 근대미술 명품전, 예술의전당
- 1997년, 한국 근대미술: 유화-근대를 보는 눈, 국립현대미술관
- 1998년, 다시 찾은 근대미술, 덕수궁 석조전
- 1999년, 한국미술 50년, 1950-1999전, 갤러리 현대
- 등 전시
- 수상
- 일본 국전 2회 입선
- 1936년, 광풍회전 입선
- 1937년-1940년, 조선 미술전람회 연 4회 특선
- 1937년, 제16회 조선 미술전람회 최고상, 덕수궁상
- 1940년, 조선미술전 추천작가상 최고상
- 1953년, 제3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대통령상
- 1963년, 제5회 대한민국 문화상
-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 1968년, 3.1 문화상
- 1968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동백장
작가 소개
1910년 경기도 개성 출생으로 호는 지연(智淵)이다.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출신의 한국 서양화 1세대 화가로 구상적인 사실주의를 추구하며 한국 아카데미즘 미술의 전통을 확립한 작가이다. 한국 근대 조각의 1세대 작가인 김경승이 그의 동생이다.
개성 제일보통학교를 거처 1925년 송도 고등상업학교를 입학한 그는 1929년 동아일보사 주최 전조선학생미술전에 「임진강철교」, 「뒷동산 풍경」이 입선될 만큼 이른 나이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1932년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学校] 서양화과를 수료하고 같은 해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이던 1936년 일본 문부성미술전람회(文部省美術展覧会)에서 「나부(裸婦)」로 입선하고 광풍회(光風會) 전람회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1937년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 참가한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부」로 첫 특선을 차지했는데 제19회까지 연속 4회의 특선을 수상하면서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 때 서양화 분야에서 추천작가가 된 심형구, 이인성과 함께 ‘추천 작가 3인전(三人展)’을 가졌다.
1943년에는 심형구, 박영선, 김만형, 손응성, 이봉상, 임응구 등과 함께 단광회(丹光會)를 조직하여 친일미술활동에 가담했다. 그해 8월 조선인 징병제가 시행되자 이를 기념하는 기록화인 「조선징병제실시」를 합작으로 제작했으며 반도총후미술전의 추천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개성여자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다가 1947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과 교수로 부임하여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추천작가로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1955년 대한미술협회 부위원장, 1957년 예술원 회원, 1960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면서 서양화단의 구상 계열을 주도하는 작가로 활동했다. 1974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작품활동을 계속해 오다가 2001년에 사망했다.
1963년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았고 1965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3·1 문화상을 수상하고, 1969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김인승은 정확한 관찰력과 뛰어난 데생력을 바탕으로 많은 인물화를 제작했던 작가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는 장미를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제작하여 「장미 화가」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주로 여인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김인승은 대상표현에 있어 사실적으로 접근하려는 자세를 지녔으며 회화의 본질은 재료를 극복하여 사실적인 표현을 이루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의 대상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동적인 것이 아니라 포즈를 취한 인물이나 정물이 대부분이다. 그가 그린 여인들은 대개 도시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앉아 있는데, 이는 많은 화가들이 시골의 정경과 인물을 주로 다루어 향토적인 느낌을 주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작가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형적인 도시적 여인좌상은 여러 젊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한 때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풍미하기도 했다.
개성 제일보통학교를 거처 1925년 송도 고등상업학교를 입학한 그는 1929년 동아일보사 주최 전조선학생미술전에 「임진강철교」, 「뒷동산 풍경」이 입선될 만큼 이른 나이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1932년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学校] 서양화과를 수료하고 같은 해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이던 1936년 일본 문부성미술전람회(文部省美術展覧会)에서 「나부(裸婦)」로 입선하고 광풍회(光風會) 전람회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1937년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처음 참가한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나부」로 첫 특선을 차지했는데 제19회까지 연속 4회의 특선을 수상하면서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 때 서양화 분야에서 추천작가가 된 심형구, 이인성과 함께 ‘추천 작가 3인전(三人展)’을 가졌다.
1943년에는 심형구, 박영선, 김만형, 손응성, 이봉상, 임응구 등과 함께 단광회(丹光會)를 조직하여 친일미술활동에 가담했다. 그해 8월 조선인 징병제가 시행되자 이를 기념하는 기록화인 「조선징병제실시」를 합작으로 제작했으며 반도총후미술전의 추천작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개성여자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다가 1947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과 교수로 부임하여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추천작가로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1955년 대한미술협회 부위원장, 1957년 예술원 회원, 1960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등을 역임하면서 서양화단의 구상 계열을 주도하는 작가로 활동했다. 1974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작품활동을 계속해 오다가 2001년에 사망했다.
1963년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았고 1965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3·1 문화상을 수상하고, 1969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김인승은 정확한 관찰력과 뛰어난 데생력을 바탕으로 많은 인물화를 제작했던 작가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는 장미를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제작하여 「장미 화가」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주로 여인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김인승은 대상표현에 있어 사실적으로 접근하려는 자세를 지녔으며 회화의 본질은 재료를 극복하여 사실적인 표현을 이루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의 대상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동적인 것이 아니라 포즈를 취한 인물이나 정물이 대부분이다. 그가 그린 여인들은 대개 도시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앉아 있는데, 이는 많은 화가들이 시골의 정경과 인물을 주로 다루어 향토적인 느낌을 주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작가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형적인 도시적 여인좌상은 여러 젊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한 때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풍미하기도 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현대미술관,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