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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본관은 광주(廣州). 속명은 김용국(金鏞國). 법호는 경봉(鏡峰), 시호(詩號)는 원광(圓光). 법명은 정석(靖錫). 경상남도 밀양 출신. 아버지는 영규(榮奎)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이다. 여러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선(禪)과 교(敎)를 포괄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으로 선승들을 지도하였다.
7세 때 밀양의 한학자 강달수(姜達壽)에게 사서삼경을 배웠으며, 15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난 뒤 1907년 출가하여 양산통도사성해(聖海)의 제자가 되었다. 1908년 3월통도사에서 설립한 명신학교(明新學校)에 입학하였으며, 그 해 9월통도사(通度寺)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청호(淸湖)를 계사(戒師)로 사미계(沙彌戒)를 받았다.
1912년해담(海曇)으로부터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은 뒤,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하여 불경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 뒤, 참선공부로 선회하여 내원사(內院寺), 해인사 퇴설당(堆雪堂), 금강산 마하연(摩訶衍), 석왕사(釋王寺) 등을 찾아다니면서 공부하던 중, 김천 직지사에서 만난 만봉(萬峰)과의 선담(禪談)에 감화 받아, 통도사 극락암에서 3개월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하였다.
이와 함께 화엄산림법회(華嚴山林法會)에서 정진하던 중, 4일 만에 오롯한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번뇌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음을 스스로 점검하고 다시 화두(話頭)를 들어 정진하다가, 1927년 11월 20일 새벽에 방 안의 촛불이 출렁이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 그 뒤, 당시의 선지식이었던 방한암(方漢巖)·김제산(金霽山)·백용성(白龍城) 등과 교유하며 정진하였다.
1930년통도사 불교전문강원 원장, 1935년통도사 주지, 1941년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이사장, 1949년 다시 통도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전국의 선승들을 지도하였다. 1953년통도사극락호국선원(極樂護國禪院)의 조실(祖室)로 추대되어 입적하던 날까지 불자들을 지도하였고, 동화사(桐華寺)·내원사(內院寺) 등 여러 선원의 조실도 겸임하였다.
한시와 시조·필묵에 조예가 깊었고, 자기개안(自己開眼)에 의한 육성으로 설법했으며, 선과 교를 포괄하는 독특한 사상을 남겼다. 또한, 통도사의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와 장엄석등(莊嚴石燈) 18좌(座)를 세웠고, 극락암 조사당의 탱화 조성 및 추모 봉행, 특별 정진처인 아란야(阿蘭惹)의 창건, 극락암 정법보각(正法寶閣) 신축 및 무량수각(無量壽閣)의 중창 등을 주관하였다.
이 밖에도 경봉장학회를 설립하였으며, 파고다공원 안에 만해선사기념비 건립도 추진하였다. 또 18세 때부터 85세까지 67년 동안 매일의 중요한 일을 기록한 일지를 남겼는데, 이 일지에는 당시의 사회상과 한국불교 최근세사가 담겨 있다.
1982년 7월 17일에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였고, 7월 21일 통도사연화대에서 다비하였다.
저서로는 법어집인 『법해(法海)』, 『속법해(續法海)』와 시조집인 『원광한화(圓光閒話)』, 유묵집인 『선문묵일점(禪門墨一點)』, 서간집인 『화중연화소식(火中蓮花消息)』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