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강원도 철원 출신의 서양화가. 그러나 광주에서 초․중․고․대학을 마치고 예술적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광주의 미술인이다.
황영성의 그림은 고향이라는 인류 모두의 추억의 공간을 주제로하여 옴니버스식 회화세계를 보여주었다. 고향과 이웃,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황소까지도 하나의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바라본다. 작품의 개괄적 주제도 농경도와 가족도이다. 우리의 농경사회가 축적해온 목가적이고 토속적인 모습과 설화적 요소들을 구수하게 풀어낸다.
이러한 독특한 화면 전개방식은 그가 국제적인 작가로 도약하는데 큰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젊은 시절 여섯 차례의 국전 특선과 문공부장관상 등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1991년 제 25회 몬테카를로 국제회화제에서 특별상인 아빕가르구르 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작가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후 살롱 도톤느전을 비롯하여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 등 현대미술의 본고장에 널리 이름을 알리는 작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몇 차례의 변화과정을 겪는다. 이른바 1970년대의 이전의 수업기와 70년대의 회색시대, 1980년대의 녹색시대, 1990년대 이후의 모노크롬시대 등이다. 또 2000년 이후에는 알루미늄 실리콘 등 현대의 소비문화와 하이테크 사회의 미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소재들로 진화시켜 나가고 있다.
다시 말해 황영성은 그의 영원한 테마인 ‘가족’을 사실적으로 바라보다가 반추상적 시각으로 전환했으며 회색과 녹색, 무채색 모노크롬과 다채색 모노크롬 회화로 전이시켰다. 2000년대 이후에는 실리콘 같은 현대문명의 파생품들을 사용해 입체적 화면으로까지 발전시키는 등 부단한 변화를 시도했다. 이 같은 노력이 국제적 작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70년대 이전의 작품은 국전 특선작 ‘병동의 오후’ 나 ‘토방’에서 보듯 지극히 아카데믹한 화풍을 견지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농가와 토담과 황소를 동심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반추상적 관점으로의 변이를 시도한다. 색채도 회색 모노크롬 위주다. 그러나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녹색과 원색의 극명한 대비로 화면에 생동감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마치 봄의 들녘을 하늘에서 바라보는 듯 한없이 평화로운 녹색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1980년대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반추상 형태의 가족이야기는 사각형 화면으로 분할돼 물고기 원숭이 곤충들이 나타난다. 또한 건물과 도시의 풍경, 공장과 비행기 같은 현대문명의 오브제들도 동시에 등장한다, 색채도 회색과 청색을 중심으로 극명한 색채의 대비를 이룬다. 집이 마을로 확대된 것도 이 무렵이고 해학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와 함께 그림이 더욱 단순화 한다.
이후 90년대는 모노크롬 시대다. 화면을 4개로 분할해 가족 이야기를 전개한 시기이며 가족이야기를 큰 가족 이야기로 확장시키기도 했다. 90년대 초반에는 무채색 모노크롬 가족이야기에 몰두했으며 중반 이후부터는 다채색 모노크롬의 ‘가족이야기’ 연작이 계속된다. 화면구성과 색채는 시기에 따라 바뀌지만 우화적이고 은유적인 상상공간으로서의 고향은 영원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작은 사각 패턴으로 구성된 화면은 마치 TV 모니터를 보는 듯한 다원색의 연속으로서 백남준의 멀티미디어적 탐구를 보는듯하다. 동시대의 미학에 대한 감수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그는 엥포르멜적 표현주의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서정적인 색채와 시적 능력으로 감성의 회화세계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황영성의 화면설정도 독특하다. 우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조감도적인 화면설정이 그렇다. 실제로 그는 회색시대에서 녹색시대로 바뀔 무렵 전라도의 농촌풍경을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면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알려진다. 원근법을 무시하고 검은 선으로 테두리 지어진 회색, 녹색, 파란색 공간에 많은 인물과 동물들을 추상의 한계까지 접근하며 보이는 그대로 묘사한다. 프랑스 미술평론가 다니엘 귀뜨리에는 “ 20세기 말 프랑스 화단을 꽃피웠던 상징주의 작품들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미술평론가이자 셍 떼엔느 미술관장인 로랑 헤기는 “그의 그림은 추상적인 표상들을 상징화시키고 있으며 이 표상들이 갖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공동체운명이라는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고 평한 바 있다.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인간과 동물 등 전통적이고 사회적 역할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각적 은유를 떠올리게 하며 고대문명이 갖고 있던 인습적인 문양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황영성은 6.25라는 전쟁공간에서 겪었던 공포와 쓰라림, 그리움의 대상인 고향마을의 정경과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화면을 분할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 화면은 시대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몇 차례의 변화를 계속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워낭소리’ 같은 감동이 바로 황영성의 회화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