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경상남도 통영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경산(慶山)이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으로 약칭)에 입선하면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에 중앙화단과 거리를 두고 고향 통영과 부산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했으며, 독특한 색채와 풍경을 이루는 작품으로 ‘색채의 마술사’ 또는 ‘바다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1915년 1월 21일 경상남도 통영시 무전동 478번지의 소지주였던 전계주의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29년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통영수산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통영수산학교를 졸업한 후 진남금융조합에서 일하면서 독학으로 미술에 입문했다. 1938년 부산미술전에 「신화적(神話的) 해변」, 「월광(月光)」, 「누드」가 입선하면서 부산과 경상남도 지역의 신진 서양화가로 주목을 받았다.
통영에서 해방을 맞은 그는 통영문화협회 창립 동인(유치진, 윤이상, 유치진, 김춘수, 김상옥 등 참여)으로 참여했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정물」로 입선한 후, 1953년 제2회 국전에서는 반추상의 「늪」으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1962년까지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국전 운영의 비리에 실망하여 이후 국전을 외면하고 ‘통영의 화가’로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6·25전쟁 이후 피난지 부산에서의 생활은 전혁림이 화가로서 기반을 다지는 토대가 되었다. 1952년 부산 밀다원 다방에서 제1회 개인전을 연 후 1955년까지 해마다 개인전을 열었으며, 1950년대 후반 추상회화를 수용하여 부산 추상회화의 개척자 역할을 하였다. 1956년부터 1962년까지 부산의 대한도자기회사 공방에서 도자기 그림을 연구했던 전혁림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에 도화, 도조, 채색 테라코타 등 도예와 회화작업을 복합시키는 독특한 작업을 전개했다. 1970년까지 부산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하던 이 시기 작품은 대부분 통영 일대와 그 인근의 갯마을 등 향토적 풍정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활달한 붓놀림, 짙은 청색조의 추상적인 화면, 부감법에 의한 구도가 이 시기 작품의 특징이다.
1977년경 부산생활을 청산하고 충무(지금의 통영시)로 귀향한 그는 1979년 『계간미술』에 ‘과소평가 받는 작가’로 소개되면서 서울의 화랑에서 작품 주문이 이어지는 등 예순 살이 넘어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1984년 제3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과 경남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하였고, 같은 해 충무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1988년 인도, 이집트, 그리스, 영국, 프랑스 등지를 여행하고, 뉴욕의 스페이스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89년 중앙일보사 주최의 ‘전혁림 근작전’을 통해 민화나 단청에서 느낄 수 있는 전통적인 색채와 선, 문양을 소재로 한 독특한 색면구성의 추상회화를 선보이면서 우리 고유의 색채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조명한 색채화가로 평가받았다. 특히 푸른색을 주조로 하면서 빨강, 노랑색과 대비시킨 선명한 색채와 민화나 단청, 전통음악 등을 도입한 이 시기 작품은 ‘한국미’의 추구로 요약할 수 있다.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혁림을 올해의 작가로 선정하였고, 2003년에는 아들 전영근이 통영시에 전혁림미술관을 설립하였다. 2005년 이영미술관에서 ‘90, 아직은 젊다’를 열어 대기만성형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회화뿐만 아니라 도자, 목조, 입체회화, 도자회화 등 광범위한 장르를 두루 개척했던 전혁림은 2010년 5월 25일 향년 96세로 3천여 점의 작품과 고향 통영에 자신의 미술관을 남기고 영면했다.
1962년에 부산시 문화상을, 1984년에 충무시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96년에는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2000년에는 부산 일맥문화재단에서 주는 일맥문화상을, 2002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정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 전혁림이 타계한 이후 전혁림미술관에서는 매년 추모전을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