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桐漁 李相璜

Lee SangHwang

  • 간찰

簡札

Letter

지본묵서
Ink on Paper

28.8×37㎝

우측 하단에 李相璜

미배접

추정가

  • KRW  200,000 ~ 500,000

응찰현황

* 마감시간 : 01. 25 - 04:05:00(PM)

남은시간

시작가

100,000 KRW

응찰단위

20,000 KRW

낙찰가 (총4회 응찰)

140,000 KRW

작가 소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주옥(周玉), 호는 동어(桐漁) 또는 현포(玄圃). 태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의 14대손으로, 아버지는 승지 이득일(李得一)이며, 어머니는 현감 유성모(柳聖模)의 딸이다.
1786년(정조 10)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고, 이 해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검열에 임명되었다. 1789년 정언이 되고, 1792년 영남에 암행어사로 나가 역전(驛田)의 세금과 시노비(寺奴婢)의 신공을 줄일 것을 청하였다.
1795년 대사간을 역임하고, 1804년(순조 4)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한성부우윤·개성유수가 되었다. 1810년 전라도관찰사가 되고, 1812년 한성부판윤·형조판서를 거쳐 이듬 해 사은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돌아와서 호조판서가 되었다. 1816년 평안도관찰사로 나가 홍경래(洪景來)의 난 이후 마비된 장중위(壯中衛)를 폐지하고, 별친기위(別親騎衛)를 설치하였다.
1820년 이조판서를 거쳐 홍문관제학·평시서제조(平市署提調) 등을 지냈으며, 1824년 좌의정이 되어, 1828년 재용 절약이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임을 강조하였다. 1829년 심양문안사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830년 세손사부(世孫師傅)를 겸하였다. 이 해 주청정사(奏請正使)로 부사 이지연(李志淵), 서장관 윤심규(尹心圭)와 함께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31년 서울과 지방의 무뢰배가 궁방과 아문을 빙자해 쌀·소금 등의 매매를 침탈하는 것을 금하도록 주장하였다. 1833년 영의정에 올라, 수령은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이므로 선택을 신중히 할 것을 청하였다.
1835년(헌종 1) 실록총재관에 임명되어 『순조실록』 편찬을 주재하였다. 1838년 영의정을 사직했으나, 이듬해 다시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성품은 검소했으며, 업무 처리는 정성을 다해 주도면밀하게 말없이 실시했다 한다. 헌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저서로는 『동어집』·『해영일기(海營日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