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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草 李錫雨

Lee SeokU

  • 고뇌

苦惱

Agony

지본채색
Ink and Color on Paper

32×62㎝

(기유년(1969))

우측 하단에 낙관

액자

추정가

  • KRW  600,000 ~ 1,200,000

응찰현황

* 마감시간 : 01. 25 - 03:25:00(PM)

남은시간

시작가

300,000 KRW

응찰단위

30,000 KRW

낙찰가 (총1회 응찰)

300,000 KRW

작가 소개

이석우는 1928년 5월 28일 충청북도 청원군 강서면 문암리에서 태어났다. 1946년 청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1년에 6·25 전쟁으로 군대에 입대하였다가 통영으로 후송되어 제대하였다. 1950년대 초 통영중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면서 부산 미국공보원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주위의 주선으로 1956년 3월부터 부산의 대신중학교에 미술 교사로 부임하여 1962년 2월까지 재직하였다. 1950년대 말부터 부산대학교·부산여자대학[현 신라대학교]·부산교육대학교 등에 출강하기 시작하여 1967년부터 동아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1953년과 1955년 부산 미국공보원에서 두 차례 개인전을 가진 이래 1969년 12월, 1971년 8월, 1974년, 1976년, 1977년 1월과 4월, 1981년 11월에 부산의 한광미술관, 서울 조선호텔 화랑, 서울 미술회관 등에서 십 수 차례 개인전을 가지며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1957년 제3회 청맥 미전을 시작으로, 1958년 뉴욕 월드 갤러리 국제전, 1959년 한일 친선 국제전, 1961년 현대 작가 초대전, 197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관하는 현대 동양화 대전, 1984년~1985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 미술 초대전, 1985년 일본에서 열린 동남아 현대 미술 대전, 프랑스에서 개최된 르쌀롱전에 참여하는 등 수많은 전시에 출품하였다.
한편으로 1968년 제1회 동아 국제전 운영 위원, 1972년과 1975년에 전국 대학 예술 제전 제3회와 제6회 미술전 동양화부 심사위원장, 1982년~1984년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의 심사 위원, 1987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산지회장을 지냈다. 이런 공적으로 이석우는 1969년 눌원 문화상과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이석우의 화풍은 해학적인 인물화로 당대 현실의 면면을 보여 주었다. 동아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1987년 10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부산대학교 예술대학의 이민한 교수가 아들이다.
이석우는 민족해방의 역사적 사건에서부터 행상하는 서민의 삶까지 현실의 모습에 관심을 가진다. 땀 흘리는 농민과 일하는 도시 서민의 모습을 담으면서 관념적인 동양화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이석우는 부산 근대기의 드물었던 동양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풍류를 즐기는 애주가였던 그는 전통놀이인 농악을 모티프로 역동적이고 흥겨운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홀로 낚시를 즐기거나 소를 모는 노인의 모습을 담은 작품에 <유산유수일생간(有山有水一生間)> <불가불한만사족(不飢不寒萬事足)>과 같은 화제를 붙임으로써 그의 정서적 지향점을 드러내고자 한다.
대표 작품으로 「재건의 육체」[1961, 국전 입선작]·「총화」[1981]·「고진해로」[1983]·「적(寂)」[1978]·「차거운 태양」[1965]·「不換三公(불환삼공)」[1981]·「을숙도」[198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