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鐵農 李基雨

Lee GiWoo

  • 휘호('무량수'), ('정관자득')

揮毫('無量壽'), ('靜觀自得')

Calligraphy('Mu-Ryang-Su'), ('Jeong-Gwan-Ja-Deuk')

지본묵서
Ink on Paper

무량수-51×32㎝, 정관자득-31.5×127.5㎝

(신해년(1971), 경술년(1970))

좌측 하단에 낙관

액자

추정가

  • KRW  200,000 ~ 500,000

응찰현황

* 마감시간 : 07. 21 - 03:45:00(PM)

남은시간

시작가

100,000 KRW

응찰단위

20,000 KRW

낙찰가 (총5회 응찰)

180,000 KRW

작가 소개

서울 출생. 본관은 전주, 자는 태섭(兌燮), 호는 쇠로 농사짓고 먹으로 밭갈 듯이 한다는 ‘철농묵경(鐵農墨耕)’의 뜻에서 철농(鐵農)이라 하였다. 경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려서 이한복(李漢福), 오세창(吳世昌), 일본인 이이다(飯田秀處) 등에게 서예와 전각을 배웠다. 특히 오세창에게서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1942년 일본 미술전람회에서 전각으로 입선하였다. 1955년에 ‘철농전각소품전(鐵農篆刻小品展)’을 개최하여 한국 서단에서 전각을 독립된 예술영역으로 개척하였다. 1962년에는 ‘서예전각전’, 1970년에는 ‘서희전(書戱展)’ 등 여러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 1972년에는 자신의 주요 전각작품 1,125과(顆)를 영인하여 『철농인보(鐵農印譜)』 3권을 간행했다.
이기우는 전각에서 중국 진·한을 기초로 하여 등완백(鄧完伯), 오양지(吳讓之), 조지겸(趙之謙), 오창석(吳昌碩) 등의 중국 대가들의 기법을 연마해 고법의 고졸미(古拙美)를 전각 작품에 표현했으며 아울러 시대 감각에 걸맞는 현대적 추상미를 접목시켜 격조 높은 독창적 작품세계를 확립하였다. 장년기부터 고혈압으로 인해 동작의 제한을 받기도 했으나 불굴의 투혼으로 극복하면서 예술세계를 펼쳤다. 특히 전각에서 획이나 새김에 고담(枯淡)한 풍미를 더해 갔고, 노년에는 예스럽고 질박한 원숙미를 보였다. 글씨에서는 전예(篆隸)와 한글 고체를 잘했는데, 칼로 새긴 듯 마르고 담담한 필치와 짜임에서의 조형감각이 돋보인다.
이밖에 서각(書刻)·도서(陶書)·도각(陶刻)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시도하여 고전을 통한 전각과 서예의 현대화를 추구했다. 서예 작품으로 강감찬 장군과 율곡이이의 동상명(銅像銘), 이상백(李想伯) 박사와 박병래(朴秉崍) 박사의 비문, 간송전형필(全鎣弼)의 동상명 등을 남겼다. 전각 작품으로 예술원장의 동인(銅印)과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의 인장을 두루 새겼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고, 한국서예가협회 회장과 한국전각협회 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