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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법호는 일붕(一鵬). 일붕선교종(一鵬禪敎宗)의 종정을 지냈다. 제주도 서귀포 출생. 어린 시절에는 한학을 공부하였다.
할아버지의 권유로 16세 때 결혼하였으나 불교 공부에 전념하다가 19세가 되던 해인 1932년 남제주군 산방굴사(山房窟寺)혜월(慧月) 문하로 출가하였다. 출가 때 받은 법명은 회암(悔巖)이다.
약 1년간 제주에서 수행하던 그는 1933년 화엄사의 진응(震應)강백을 찾아가 수학하였다. 1935년 진응이 완주위봉사(威鳳寺) 강원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도 따라갔으며 그 곳에서 사미과·사집과를 수료하였다.
이때 위봉사의 주지로 있던 춘담(春潭)은 그를 법제자로 삼았으며 ‘일붕’이라는 법호를 지어 주었다. 재정 형편상 위봉사 강원이 문을 닫게 되자 춘담의 권유로 서울개운사(開運寺)박한영(朴漢永) 문하로 들어 왔다.
그로부터 3년 반에 걸쳐 사교과·대교과의 가르침을 받았다. 박한영의 천거로 월정사 강원의 강사로 재직하던 그는 1944년 일본 유학 길에 올랐다.
당시 월정사에 출강하던 김태흡(金泰洽)의 적극적 권유로 마련된 일이었는데, 이로부터 1946년까지 경도(京都) 임제종 임제전문학교(臨濟專門學校)에서 수학하였다.
귀국 이후 종로구 창신동의 안양암 포교법사로 있으면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입학하여 1950년 졸업하였다. 동국대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원광대학교·전북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였다.
1953년해인대학(지금의 경남대학교) 교수를 거쳐 1956년부터 1962년까지 동아대학교 철학과 주임교수로 재직하였다. 1962년 동국대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1969년에는 동교 불교대학장에 취임하였다.
대학 강단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던 그는 한편으로 활발한 국내외 포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1962년 한국불교청년회 총재로 추대되었고 같은 해 불국사 주지로 취임하였다.
미얀마·독일·스리랑카·영국·미국 등지의 대학에서는 교환교수로 활동하였다. 아울러 1958년 태국 방콕에서 개최된 제5차 세계불교도우의회(WFB)에는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을 마친 이후 1970년과 1980년대에는 해외포교에 전념하였다. 입적 이전까지 그가 방문한 국가는 무려 157개국에 달하며, 1969년 미국 템플(Temple)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26개 분야 126개의 국내외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특히 미국 지역에 사찰을 건립하는 등의 활발한 포교활동은 양국 간 문화교류 증진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82년 미국 대통령 레이건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하였다.
한때 조계종 원로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1988년 대한불교 일붕선교종을 창종(創宗)하면서 조계종단을 떠났다. 이후 일붕선교종의 종정을 지냈으며, 1992년에는 그가 계속 추진해 오던 세계불교 법왕청 설립 총회가 개최되자 초대 법왕(法王)에 추대되었다.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정회원 16개국 대표가 참가했던 제1차 총회에 이어 1994년 개최된 제2회 대회에서는 부처님 오신날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제정하기도 하였다.
또한 세계 전역을 다니면서 평화를 주창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1955년에는 세계평화교육자협회(IAEWP)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바 있다.
입적하기 직전까지도 중국·미국 등지의 포교 활동을 전개했던 그는 서울특별시 신영동 소재 법왕청에서 세속 나이 83세, 법랍 64세로 입적하였다.
그는 126개의 박사학위, 1,042권의 저서, 757개의 통일기원비 건립, 50여만 점의 선필(禪筆), 최대 석굴법당 건립 등 5개 분야에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