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逸齋 申漢枰

Shin HanPyeong

  • 풍속화

風俗畫

Genre Painting

견본채색
Ink and Color on Silk

60×45㎝

액자

전칭작(傳稱作)

추정가

  • KRW  1,000,000 ~ 3,000,000
  • USD   680 ~ 2,020
  • JPY     98,000 ~ 294,000

작가 소개

신한평(申漢坪)은 조선 후기의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으로, 그의 호는 일재(逸齋)이고,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자는 자익(子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한평이 태어난 해는 1726년으로 알려졌으나 확실한 근거가 없고, 1735년으로 제시된 경우도 있으나 이 또한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신한평의 숙부인 신덕흡(申德洽)의 생몰년을 바탕으로 신한평의 부친인 신덕광(申德洸)이 태어난 해를 추측하고, 신한평이 교유했던 인물들의 나이와 그가 1809년까지 규장각 차비대령 화원직에 있었음을 고려할 때 1726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신한평의 종조인부인 신세담(申世潭)과 당숙인 신일흥(申日興)도 화원이었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신윤복(申潤福)이 신한평의 아들이다. 신한평은 신윤복 외에도 아들 신윤수(申潤壽)와 딸 하나를 두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나타난 신한평에 관한 기사는 어진제작에 관련된 사항이 주류를 이룬다. 또한 1784년부터 1809년까지 26년간 차비대령화원으로 봉직하였으며, 4차례 사과 · 사정에 부록된 사실이 확인되어 그의 활동상이 드러나며 기량과 화격에 대한 평가도 엿볼 수 있다. 또한 전래작과는 별개로 신한평이 제작한 화목(畵目)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니 인물 · 속화 · 영모 · 초충 · 산수 · 누각 · 문방 · 매죽 등 여러 분야를 두루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내각일력(內閣日曆)』에 의하면 신한평의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면도 드러난다. 정조의 명을 받고 김홍도가 금강산 사생기행을 떠난 1788년 가을인 9월 18일, 신한평과 이종현(李宗賢) 등은 책가도를 그려 제출하였다. 하지만 이들 그림이 하나같이 형편없다 하여 그들은 차비대령화원에서 파면된 채 귀양을 가야했다. 그들의 자리는 장한종(張漢宗) · 김재공(金在恭) · 허용(許容)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신한평은 이듬해인 1789년 장조의 영우원을 수원 화산으로 옮기는 천봉도감청(莊祖永祐園遷奉都監廳)에 소속되어 일하였다. 신한평이 정조 원유관본(正祖遠遊冠本) 어진 제작에 참여한 해인 1791년 2월 24일 녹취재에 응시한 차비대령화원이 모두 파면 당하였고, 같은 해 5월 5일 차비대령 화원의 그림 중 특히 신한평의 것을 빨리 없애 버리라는 극단의 표현도 보이며, 규장각의 각신(閣臣)들까지 싸잡아 꾸지람을 들었다. 이 때문인지 이로부터 1790년대 전반 신한평은 활동이 위축된 양 기록상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1773년 1월 9일의 <영조어진> 제작, 1774년 <이광사 초상> 제작에 이어 같은 1770년대 활동상을 알려주는 기록은 1776년 3월 5일 영조가 승하하자 5월 6일 혼전도감(魂殿都監)에서 국장에 소요되는 구의(柩依)에 보불을 그린 사실이 확인된다. 또 서울 중부동 소재 강희언(姜熙彦)의 집인 담졸당(擔拙堂)에서 1777년 7월 신한평 · 김홍도 · 김응환 · 김인문 · 한종일 · 이종현 등과 함께 공사간의 주문에 의한 그림을 그렸다. 이 당시 신한평이 가장 연상으로 이들 사이의 교유를 전해준다.
1770년대에 이어 1780년대는 거의 매년의 활동이 밝혀져 있다. <화조도>, <쌍순도>, <우경산수도(雨景山水圖)> 등 현존하는 여덟 작품 중 3점이 1788년에 제작된 것이다. 아울러 1790년대 초기는 활동의 공백 기간이고 후반에 치우쳐 있으니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이다. 문헌기록을 살필 때 35년을 넘는 작품 활동에 대한 개관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신한평은 어진 제작에 3차례 참여한 어용화사이다. 전술했듯이 1773년 영조의 곤복(袞服) 2본, 1781년 정조 익선관본(翼善冠本), 1791년 정조의 원유관본(遠遊冠本)의 제작에 동참하였다. <이광사초상>같은 사대부상을 남겼고, 신윤복 풍속화의 배양토를 짐작케 하는 <자모육아도(慈母育兒圖)>같은 풍속화, 궁중장식화 계열로 채색의 사용 및 묘사의 적확성이 돋보이는 <화조화> · <미인도> 등 수묵담채의 영모화, 남종문인화 계열의 산수화 등 장르별로 수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