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장리석은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그림을 익히고, 《제21회 조선미술전람회》(1942)부터 세 차례 연속으로 입선했다. 한국전쟁으로 1951년에 제주도로 피난을 갔으나 이후 다시 상경해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여러 차례 특선을 수상하며, 추천 작가 및 심사 위원으로 활동했다. 목우회전 등 다수의 그룹전, 초대전에 참여하였으며 1959년부터 서라벌예술대학(현재, 중앙대학교) 미술과에서 교직 생활을 했으며, 이후 명예 교수로 위촉되었다.
작가는 일상적인 풍경 속 인물을 중심으로 작품을 제작했으며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리며 그들의 애환을 담아냈다. 장리석의 작가로서의 명성은 제4회 국전의 <조롱과 노인>으로부터이며, 작가로서의 확고한 위치에 이른 것은 제9회 국전의 <그늘의 노인>부터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선전(鮮展)을 통해 데뷔했지만 작가로서의 명성은 때늦은 느낌이 없지 않다. 그만큼 그는 혜성처럼 반짝 불꽃을 튀기다 사라지는 천재형의 작가이기보다는 오랜 세월을 거쳐 쌓아올려 가는 만성형(晩成型)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예리한 칼날의 비정한 감각에서 오는 이지적인 타이프이기보다는 끝이 닳은 구수함과 뭉클한 정감을 쏟아 놓는 타이프의 작가이다.
고향인 평양을 북에 두고 온, 인간으로서 또는 예술가로서 겪어야 했던 시대적 고뇌가 그의 작품의 배면(背面)을 이루어 주고 있다는 점. 그는 누구보다도 건실(健實)하게 오늘을 살아온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화려하면서 위선에 가득 찬 앞면이 아니라 언제나 어두우면서도 진실에 찬 뒷면, 서민생활의 애환(哀歡)을 쫓는 시점(視點)은 한 사람의 시대적 증인으로서 작가적 위치를 획득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상을, 윤리를 앞세우는 이지적(理智的)인 파악에서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감동적인 충격에서 접근해 들고 있기 때문에 구원이나 색채에 있어서 극적(劇的)인 대비를 보여줄 때가 많다. 뭉텅뭉텅하게 점착(粘着)되는 마티에르는 이 같은 방법에서 연유하는 표현기법이다. 따라서 형태는 윤곽선을 통해 그려지지 않고 색채의 마스에 의해 커다란 포름으로 요약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