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耕煙散人 王翚

Wang Hui

  • 산수화 대련*

山水畵 對聯*

A Pair of Landscape*

지본수묵
Ink on Paper

163×44㎝

(무오년(1678))

액자

추정가

  • KRW  1,000,000 ~ 2,500,000
  • USD   830 ~ 2,080
  • JPY     89,000 ~ 223,000

낙찰가

KRW 1,000,000

작가 소개

자 석곡(石谷). 호 경연산인(耕煙散人) ·청휘주인(淸暉主人). 우산(虞山:江蘇省) 출신. 문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동양의 화가, 장하에게 사사받았다. 왕감(王鑑)에게 화재를 인정받아 그의 가르침을 받고, 뒤에 다시 왕시민(王時敏)의 지도를 받았다. 60세 때 강희제(康熙帝)의 부름에 의해 전전년의 강남어행(江南御幸)을 그린 《남순도(南巡圖)》를 비롯하여 자주 제왕의 명으로 그림을 그려 당대 제일의 화성(畵聖)으로 일컬어졌다. 상으로 하사받은 제액(題額)으로 인해 이후 청휘주인이라 불리웠다. 화풍은 남화의 정통을 계승한 것으로 보이며, 동기창(董其昌)의 전형주의를 이어받아 화면은 정비되고 용필도 뛰어났으나 기운(氣韻)에서 부족한 듯한 아쉬움이 있다. 남종 ·북종의 두 화체를 처음으로 절충함으로써 청조화원의 남화화(南畵化)에 영향을 끼쳤으며 우산파(虞山派)를 여는 등 업적이 크다.
사왕오운(四王吳慢)의 한 사람으로 왕시민(王時敏), 왕감, 왕원기(王原祁)의 사왕(四王)과 오력(吳曆), 운수평(惲壽平)과 더불어 ‘청초육대가(清初六大家)’로도 일컬어진다. 사왕 중 가장 기교적이며 여러 가지의 묘사 형식을 소화했다. 문하에 왕구, 양진, 이세탁, 서용, 상예, 왕영, 송준업 등이 있고 우산파라 칭했다. 왕휘의 낙관이 찍혀 있는 현재의 작품은 상당히 많아 왕성한 제작 활동을 보여준다. 『청휘화발(淸暉畫跋)』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