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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 이육록 一松 李六錄Lee YookLok
1926 ~ 2020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1926년 전남 담양 출생
- 서울과 광주지역 중고교에서 14년간 교사생활
- 목우회 공모전 입상 회원 활동
- 1979년 살롱전 금상
- 1980년 Paris Academie de la Grande Chaumiere 서양화 전공
- Academie Lutece 금상 2회(파리)
- 프랑스 Cote of Azui 그랑팔레상
- 목우회 대상전 심사위원
- 한국현대미술 대상전 심사위원
- 광주시전 심사위원
- 프랑스 문화성에서 화실, 아파트 제공받음.
-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 프랑스 르 살롱전 초대작가
- 사단법인 목우회 고문
작가 소개
전남 담양 출신의 서양화가, 호는 일송(一松)이다.
이육록의 회화는 선을 파괴하고 면과 이미지만으로 환상의 세계를 연출함으로써 초현실주의를 연상케 하는 그림을 그린다. 이미지의 회화라고 설명할 있다. 작가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망(望)’ 시리즈도 결국은 작가의 염원과 기도를 담은 가상의 세계이다.
그의 작품은 크게 세 차례의 변화를 겪는다.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세계적인 추세가 인상주의 회화를 탐닉하던 시기다. 그 역시 아카데믹한 극사실주의 화풍을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빛과 색채가 어우러진 인상파 화풍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때 사실주의 경향을 띤 향토색 짙은 한국의 산하, 농촌풍경 등을 많이 그렸고 여기서 조금 발전하여 섬세한 기법의 색채예술, 서정이 넘치는 화사한 한국의 빛깔, 태고의 신비가 흐르는 자연의 경관 등을 현장감 있게 묘사했다.
서울과 광주에서 10여년 동안 미술교사로 근무하다가 1979년 프랑스 르 살롱전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나이 쉰이 넘어 Paris Academie de la Grande Chaumiere에서 본격적으로 서양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파리로 유학할 당시 그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화실과 아파트를 제공받았다.
이육록의 화가로서의 활동은 이때 시작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먼저 작가의 의식세계가 변했다. 그때까지의 매너리즘에서 탈출하여 표현법, 주제 등에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파리 유학기의 작품에는 아스라이 뻗은 유럽의 대평원, 하늘과 땅이 맞닿은 영원한 대지에 점중(點中) 물상들이 동화나 설화처럼 전개되었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강 기와지붕, 산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림 같은 집들, 아름다운 양귀비꽃을 비롯한 이름 모를 야생화 등이 이시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Academie Lutece 금상 2회, 프랑스 Cote of Azui 그랑팔레상, 마르세이유 국제대전 국제상 수상 등이 증명하듯 이육록은 이때 화가로서의 절정기를 맞았다. 그리고 독보적인 자기언어를 만들어내는 변신의 시대에 그가 선택한 테마가 ‘망(望)’이다.
이 ‘망(望)’시리즈는 세상의 오염과 질곡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몸부림과 갈망, 최상의 염원과 기도가 농축되어 있다. 모노톤의 절제된 색조 속에서 펼쳐지는 화면은 보랏빛 안개가 자욱한 환상적인 수중 도시를 연상시킨다. 또는 꽃의 요정에 이끌리어 한없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깊은 심연을 느끼게 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리드미컬한 음악이 흐르는 표현주의 양식의 주제와 기법으로 변신해 치열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팔순을 넘긴지 오래지만 매우 정열적인 활동을 보여 서울 교보생명 빌딩의 3,000호 대작을 비롯하여 대우그룹 빌딩의 2,500호, 역시 교보생명 빌딩의 1,500호 2점과 1,000호 1점, 100호 340점 등 엄청난 양의 대작들을 그렸다.
그래서 그는 대한민국 서양화 작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로 회자되고 있다. 이 같은 적극적인 활동으로 프랑스 르 살롱전 초대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대한민국원로작가 초대전, 한국-캐나다 현대작가전, 정부수립 30주년기념 초대작가전 등 많은 전시회에 초대받았다. 또한 한국현대미술대상전, 목우회 공모전 등의 심사위원을 지냈다.
이육록의 회화는 선을 파괴하고 면과 이미지만으로 환상의 세계를 연출함으로써 초현실주의를 연상케 하는 그림을 그린다. 이미지의 회화라고 설명할 있다. 작가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망(望)’ 시리즈도 결국은 작가의 염원과 기도를 담은 가상의 세계이다.
그의 작품은 크게 세 차례의 변화를 겪는다.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세계적인 추세가 인상주의 회화를 탐닉하던 시기다. 그 역시 아카데믹한 극사실주의 화풍을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빛과 색채가 어우러진 인상파 화풍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때 사실주의 경향을 띤 향토색 짙은 한국의 산하, 농촌풍경 등을 많이 그렸고 여기서 조금 발전하여 섬세한 기법의 색채예술, 서정이 넘치는 화사한 한국의 빛깔, 태고의 신비가 흐르는 자연의 경관 등을 현장감 있게 묘사했다.
서울과 광주에서 10여년 동안 미술교사로 근무하다가 1979년 프랑스 르 살롱전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나이 쉰이 넘어 Paris Academie de la Grande Chaumiere에서 본격적으로 서양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파리로 유학할 당시 그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화실과 아파트를 제공받았다.
이육록의 화가로서의 활동은 이때 시작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먼저 작가의 의식세계가 변했다. 그때까지의 매너리즘에서 탈출하여 표현법, 주제 등에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파리 유학기의 작품에는 아스라이 뻗은 유럽의 대평원, 하늘과 땅이 맞닿은 영원한 대지에 점중(點中) 물상들이 동화나 설화처럼 전개되었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강 기와지붕, 산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림 같은 집들, 아름다운 양귀비꽃을 비롯한 이름 모를 야생화 등이 이시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Academie Lutece 금상 2회, 프랑스 Cote of Azui 그랑팔레상, 마르세이유 국제대전 국제상 수상 등이 증명하듯 이육록은 이때 화가로서의 절정기를 맞았다. 그리고 독보적인 자기언어를 만들어내는 변신의 시대에 그가 선택한 테마가 ‘망(望)’이다.
이 ‘망(望)’시리즈는 세상의 오염과 질곡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몸부림과 갈망, 최상의 염원과 기도가 농축되어 있다. 모노톤의 절제된 색조 속에서 펼쳐지는 화면은 보랏빛 안개가 자욱한 환상적인 수중 도시를 연상시킨다. 또는 꽃의 요정에 이끌리어 한없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깊은 심연을 느끼게 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리드미컬한 음악이 흐르는 표현주의 양식의 주제와 기법으로 변신해 치열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팔순을 넘긴지 오래지만 매우 정열적인 활동을 보여 서울 교보생명 빌딩의 3,000호 대작을 비롯하여 대우그룹 빌딩의 2,500호, 역시 교보생명 빌딩의 1,500호 2점과 1,000호 1점, 100호 340점 등 엄청난 양의 대작들을 그렸다.
그래서 그는 대한민국 서양화 작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로 회자되고 있다. 이 같은 적극적인 활동으로 프랑스 르 살롱전 초대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대한민국원로작가 초대전, 한국-캐나다 현대작가전, 정부수립 30주년기념 초대작가전 등 많은 전시회에 초대받았다. 또한 한국현대미술대상전, 목우회 공모전 등의 심사위원을 지냈다.
출처/전남문화예술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