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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만 이용식 稚萬 李容植Lee YongSik

1854 ~ ?

조선

작가약력

  • 1854년(철종 5)∼미상.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치만(稚萬). 조선 말기의 관료.

작가 소개

조선말기의 독립운동을 옹호한 관료이다. 종조부는 이희갑(李羲甲), 조부는 이익재(李益在), 부친은 이승조(李承祖)이다. 1875년(고종 12) 문과에 을해(乙亥) 별시(別試) 을과(乙科) 3위로 급제했다. 설서(設書), 검열(檢閱)을 거쳐 정언(正言), 응교(應敎), 사간(司諫), 승지(承旨), 예조참판(禮曹參判),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였다. 외직(外職)으로는 의주부윤(義州府尹), 개성유수(開城留守) 등을 거쳤고 1895년(고종 32)에는 춘천에 관찰사로 나갔다. 1902년(광무 6) 윤용선의 무능을 탄핵했다가 철조로 유배되었다. 얼마 후 풀려나 황해도관찰사로 나가고 학부대신에 임명되었으며 전북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909년(순종 3) 이완용의 내각에 들어가 학부대신이 된다. 일제강점기에 자작(子爵)의 칭호를 받았으며 총독부(總督府) 중추원(中樞院) 고문(顧問), 경학원(經學院) 부제학(副提學)을 했다. 후에 조선인의 저항을 옹호(擁護)하고 독립운동에 가담해 작위를 빼앗겼다.
출처/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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