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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억 李壽檍Lee SooAuck
1918 ~ 1990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 1935년 평양사범대학교 졸업
- 1943년 일본 데코쿠미술학교 서양화과 졸업
- 기관 경력
- 1936년 도일
- 1970년-198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 목우회 이사
- 1975년-1979년 상명여자대학교, 강원대학교 강사
- 1985년 현대사생회 회장
- 전시
- 1943년, 창원회전, 동경
- 1946년, 제1회 미술협회전, 동경
- 1951년, 6.25 종군 화가단전, 부산
- 1955년, 동남아 순회전, 동남아
- 1965년, 60년전: 100인 초대전, 경복궁 미술관
- 1969년-1988년, 개인전 다수
- 1970년, 목우회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0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국립현대미술관
- 1977년, 한국 현대미술 대전: 서양화, 국립현대미술관
- 1979년, 한국 현대미술-1950년대의 서양화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1년, 한국미술 `81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2년, 한국의 자연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3년, 국전 출신 작가전, 미술회관
- 1984년-1985년,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6년, 한국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7년, 현대미술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8년, 한국 현대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
- 1990년, 설악산 연작전, 롯데 미술관
-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 남으로 간 화가 북으로 간 화가
- 1997년, 한국 근대미술: 유화- 근대를 보는 눈, 국립현대미술관
- 1998년, 다시 찾은 근대미술, 덕수궁 석조전
- 등 전시
- 수상
- 1946년, 제일미술협회공모전 입전
- 1946년, 북조선예술축전 동상
- 1951년, 6.25 종군화가단전 참모총장상
- 1957년-1959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특선 2회
- 저술
- 고희전 화집, 1988년
작가 소개
본관은 전주(全州). 함경남도 정평 출생. 1937년함흥농업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사범학교 단기강습과를 거쳐 보통학교 교사로 있다가, 1939년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데이코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에서 양화를 전공하였다.
일본 유학 중인 1943년 일본 도쿄 창원회전과 1946년도쿄 제일미술협회전에 참여하였다.
1946년 귀국하여 함흥(咸興)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북조선미술동맹 함경남도위원회 서기장에 피선되어 활동하다가 6·25때 북진했던 국군을 따라 남한으로 넘어왔다. 월남 후 대구에서 국방부 정훈국 종군화가단에 들어가 그린 대작 「야전도(夜戰圖)」가 1953년 제6회 종군화가단전쟁미술전에서 참모총장상을 받았다. 그 외에도 「폐허의 서울」(1952년)을 비롯한 종군 기록화를 많이 제작하였다. 특히 1954년에 그린 대작 「6·25 동란」은 피난민 행렬의 비극적 상황을 주제로 삼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무렵부터 표현 형식이 그간의 재현적 사실주의에서 벗어난 조형적 변용과 구성적인 화면 창조를 지향하였다. 그리고 1957∼1960년에는 완전 추상 작업으로 「역(歷)」, 「적(蹟)」 등을 연작하였다.
그러나 1953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 출품하여 입선 및 특선한 작품들은 사실주의 정신의 서정적 표현으로 일괄된 여인상, 나부(裸婦), 자연 풍경 및 생활 주변의 정물화였다. 국전에서는 1970년 추천 작가, 1975년 이후 초대 작가가 되어 1981년의 마지막 제30회전 때까지 해마다 참가하는 동안 심사위원도 역임하였다.
1987년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유산의 찬미를 서사시적인 화면 전개로 연작한 대작 「민족의 향(香)」은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정신적 작품 의욕을 집중시켜 남긴 역작이다. 주제 구성과 필력에서 심혈을 기울인 6폭의 연작에 각각 ‘고구려’, ‘백제’, ‘신라’(2점), ‘고려’, ‘이조’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리고 각 시대의 상징적 유적과 유물인 고분 벽화, 금관, 불상, 석탑, 토기, 청자, 백자, 그밖에 궁궐 건물 등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극적 구성에 등장시켰다. 그래서 이를 ‘민족의 향기’로 집약시켰다. 뒤이어 발표한 1988년의 「농악」 연작도 같은 성격으로 민족적 전통문화 찬미의 주제 의식을 담은 것이었다.
1951년 종군화가단전 참모총장상을 수상하였고, 1962년에는 강원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일본 유학 중인 1943년 일본 도쿄 창원회전과 1946년도쿄 제일미술협회전에 참여하였다.
1946년 귀국하여 함흥(咸興)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북조선미술동맹 함경남도위원회 서기장에 피선되어 활동하다가 6·25때 북진했던 국군을 따라 남한으로 넘어왔다. 월남 후 대구에서 국방부 정훈국 종군화가단에 들어가 그린 대작 「야전도(夜戰圖)」가 1953년 제6회 종군화가단전쟁미술전에서 참모총장상을 받았다. 그 외에도 「폐허의 서울」(1952년)을 비롯한 종군 기록화를 많이 제작하였다. 특히 1954년에 그린 대작 「6·25 동란」은 피난민 행렬의 비극적 상황을 주제로 삼은 그의 대표작이다. 이 무렵부터 표현 형식이 그간의 재현적 사실주의에서 벗어난 조형적 변용과 구성적인 화면 창조를 지향하였다. 그리고 1957∼1960년에는 완전 추상 작업으로 「역(歷)」, 「적(蹟)」 등을 연작하였다.
그러나 1953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 출품하여 입선 및 특선한 작품들은 사실주의 정신의 서정적 표현으로 일괄된 여인상, 나부(裸婦), 자연 풍경 및 생활 주변의 정물화였다. 국전에서는 1970년 추천 작가, 1975년 이후 초대 작가가 되어 1981년의 마지막 제30회전 때까지 해마다 참가하는 동안 심사위원도 역임하였다.
1987년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유산의 찬미를 서사시적인 화면 전개로 연작한 대작 「민족의 향(香)」은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정신적 작품 의욕을 집중시켜 남긴 역작이다. 주제 구성과 필력에서 심혈을 기울인 6폭의 연작에 각각 ‘고구려’, ‘백제’, ‘신라’(2점), ‘고려’, ‘이조’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리고 각 시대의 상징적 유적과 유물인 고분 벽화, 금관, 불상, 석탑, 토기, 청자, 백자, 그밖에 궁궐 건물 등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극적 구성에 등장시켰다. 그래서 이를 ‘민족의 향기’로 집약시켰다. 뒤이어 발표한 1988년의 「농악」 연작도 같은 성격으로 민족적 전통문화 찬미의 주제 의식을 담은 것이었다.
1951년 종군화가단전 참모총장상을 수상하였고, 1962년에는 강원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