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검색
- Service
- 작가검색
청전 이상범 靑田 李象範Yi SangBom
1897 ~ 1972
근대·현대
한국화
작가약력
- 기관 경력
- 1918년 조선서화협회 창립
- 1923년 동석사 창립
- 1928년-1937년 동아일보 미술담당 기자
- 1932년 현충사 이충무공 영정 제작 봉안
- 1936년-1937년 조선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 1938년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피검
- 1949년-197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및 운영 자문위원, 고문
- 1949년-197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명예교수
- 1950년-1955년 동아일보사 고문
- 1950년-1961년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 1956년-1961년 미술협회 고문
- 전시
- 1918년, 조선서화협회 창립전
- 1921년, 조선 서화협회전
- 1923년, 이상범, 노수현 2인전
- 1935년, 소품 백폭전: 이상범, 이여성 2인전
- 1940년, 산수화 10대 명가전, 조선미술관
- 1941년, 제1회 청전화숙전
- 1942년, 1952년, 개인전 (2회)
- 1953년, 현대작가 초대전, 국립중앙박물관
- 1958년, 한국 현대회화전,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
- 1966년, 10대 작가전, 신세계 화랑
- 1967년, 한국 동양화 10인전
- 1971년, 동양화 6대가전, 신문회관
- 수상
- 1922년-1944년, 제1회-23회 조선 미술전람회 특선 1회 및 입선 1회
- 1929년, 제8회 조선 미술전람회 최고상
- 1932년, 이왕가상
- 195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 1962년, 국민훈장대통령장
- 1963년, 3.1문화상 예술부문 본상 1965년, 서울시문화상
- 1999년 한국 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작가 소개
호는 청전(靑田).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에서 몰락한 선비 승원(承遠)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활고 때문에 1915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학비를 받지 않았던 서화미술원(書畫美術院)에 입학, 1917년 수료한 뒤 스승 안중식(安中植)의 화실인 경묵당(耕墨堂)에서 기거하며 계속 화업을 쌓았다.
1923년 이용우(李用雨)·노수현(盧壽鉉)·변관식(卞寬植)과 동연사(同硯社)를 조직하고 전통 회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그해 11월에 노수현과 함께 2인전을 개최하는 것으로 중단되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929년 최고상인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하였다. 이어서 추천 작가와 심사 위원을 역임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사 재직 시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다. 그 후 1933년에 자택에 설립하였던 청전화숙(靑田畫塾)에서 광복 때까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4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창설되자 이에 참여하여 추천 작가·심사 위원·고문 등을 역임하며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0년부터 1961년의 정년퇴직 시까지는 홍익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서화미술원과 경묵당 수학 시절인 초기에 안중식의 화풍을 따라 남북종(南北宗) 절충 화풍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1923년 무렵부터는 논과 개울을 근경에 두고 나지막한 야산을 원경에 배치하여 횡으로 전개되는 독창적인 구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를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는 개인 소장의 「산수도」(1919년)와 제3회 및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인 「모연도(暮煙圖)」(1924년)·「초동도(初冬圖)」(1926년)를 들 수 있다.
청전 이상범은 근대 한국화를 빛낸 화가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미 30대 후반에 미술계의 춘원 이광수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그리고 지금도 대표적인 한국 근대 미술가 중 한명이다. <청전양식>으로 불리는 독창적인 화풍을 이룩하였고 그의 이러한 개성과 창의력은 우리의 자연과 고향에 대한 민족 공통의 정서와 미의식을 자극하고 국민적 공감을 지닌 한국적 풍경을 그려내었다. 그는 우리 자연의 향토성과 서정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표현하는데 평생을 바쳐 노력했다. 고전규범을 답습하던 종래의 정형산수화에서 서구 풍경화의 사생개념과 화법을 도입하여 근대저인 사경산수화를 앞장서 개척했던 이상범이 추구한 향토적 자연은 민족정서와 감정과 심미의식을 배양시킨 모태로서의 의의와 결핍된 현실을 초월하는 소망 충족적인 이상세계로서의 의미를 함께 지닌다.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가 중세적 가치나 이념과 밀착되어 우리 산천의 특정 경관을 주로 다루었던데 비해 그가 추구했던 것은 평범한 야산과 시냇물이 보이는 시골과 산골의 일상적인 풍토미였다. 이상범은 바로 이러한 향토경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토속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계절감과 아침, 점심, 저녁의 미묘한 기상감의 무궁한 조화와 더불어 <청전양식>으로 불리는 특유의 개성적인 수묵화법을 통해 담아냄으로써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성취했다. 그리고 이를 무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우리들 삶의 기본 정서를 환기시켜주는 촌부의 순박한 모습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국인 고유의 심성을 대변하는 보편적인 서정 세계를 만들어 냈다.
그의 독자적인 양식이 형성되는 것은 1945년 이후부터이다. 이 시기에는 농촌의 전원 풍경을 2단의 간단한 구도 속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엷은 먹에서 차츰 진한 데로 변화하는 농담의 묘를 살려 향토색 짙은 세계로 승화시키고 있다. 특히 시골 산야의 정취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특유의 기법으로 처리하여 한국적 서정성을 격조 높게 다루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동아일보사 소장의 「설로도(雪路圖)」(1957년), 개인 소장의 「고원귀려도(高原歸旅圖)」(1959년) 등이 있다. 그는 전통적 수묵 기법의 새로운 창조적 추구와 더불어 한국 산야와 전원의 독특한 향토적 분위기를 독자적인 사상풍의 화법으로 구현시킨 근대 한국화의 대표적 산수화가이다.
1957년 예술원공로상, 1962년 문화훈장, 1963년 3·1문화상, 1965년 서울시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1923년 이용우(李用雨)·노수현(盧壽鉉)·변관식(卞寬植)과 동연사(同硯社)를 조직하고 전통 회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그해 11월에 노수현과 함께 2인전을 개최하는 것으로 중단되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929년 최고상인 창덕궁상(昌德宮賞)을 수상하였다. 이어서 추천 작가와 심사 위원을 역임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사 재직 시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다. 그 후 1933년에 자택에 설립하였던 청전화숙(靑田畫塾)에서 광복 때까지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47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창설되자 이에 참여하여 추천 작가·심사 위원·고문 등을 역임하며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0년부터 1961년의 정년퇴직 시까지는 홍익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서화미술원과 경묵당 수학 시절인 초기에 안중식의 화풍을 따라 남북종(南北宗) 절충 화풍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1923년 무렵부터는 논과 개울을 근경에 두고 나지막한 야산을 원경에 배치하여 횡으로 전개되는 독창적인 구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를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는 개인 소장의 「산수도」(1919년)와 제3회 및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인 「모연도(暮煙圖)」(1924년)·「초동도(初冬圖)」(1926년)를 들 수 있다.
청전 이상범은 근대 한국화를 빛낸 화가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이미 30대 후반에 미술계의 춘원 이광수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그리고 지금도 대표적인 한국 근대 미술가 중 한명이다. <청전양식>으로 불리는 독창적인 화풍을 이룩하였고 그의 이러한 개성과 창의력은 우리의 자연과 고향에 대한 민족 공통의 정서와 미의식을 자극하고 국민적 공감을 지닌 한국적 풍경을 그려내었다. 그는 우리 자연의 향토성과 서정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표현하는데 평생을 바쳐 노력했다. 고전규범을 답습하던 종래의 정형산수화에서 서구 풍경화의 사생개념과 화법을 도입하여 근대저인 사경산수화를 앞장서 개척했던 이상범이 추구한 향토적 자연은 민족정서와 감정과 심미의식을 배양시킨 모태로서의 의의와 결핍된 현실을 초월하는 소망 충족적인 이상세계로서의 의미를 함께 지닌다. 조선 후기의 진경산수화가 중세적 가치나 이념과 밀착되어 우리 산천의 특정 경관을 주로 다루었던데 비해 그가 추구했던 것은 평범한 야산과 시냇물이 보이는 시골과 산골의 일상적인 풍토미였다. 이상범은 바로 이러한 향토경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토속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계절감과 아침, 점심, 저녁의 미묘한 기상감의 무궁한 조화와 더불어 <청전양식>으로 불리는 특유의 개성적인 수묵화법을 통해 담아냄으로써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성취했다. 그리고 이를 무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우리들 삶의 기본 정서를 환기시켜주는 촌부의 순박한 모습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국인 고유의 심성을 대변하는 보편적인 서정 세계를 만들어 냈다.
그의 독자적인 양식이 형성되는 것은 1945년 이후부터이다. 이 시기에는 농촌의 전원 풍경을 2단의 간단한 구도 속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엷은 먹에서 차츰 진한 데로 변화하는 농담의 묘를 살려 향토색 짙은 세계로 승화시키고 있다. 특히 시골 산야의 정취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특유의 기법으로 처리하여 한국적 서정성을 격조 높게 다루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동아일보사 소장의 「설로도(雪路圖)」(1957년), 개인 소장의 「고원귀려도(高原歸旅圖)」(1959년) 등이 있다. 그는 전통적 수묵 기법의 새로운 창조적 추구와 더불어 한국 산야와 전원의 독특한 향토적 분위기를 독자적인 사상풍의 화법으로 구현시킨 근대 한국화의 대표적 산수화가이다.
1957년 예술원공로상, 1962년 문화훈장, 1963년 3·1문화상, 1965년 서울시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현대미술관,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