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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蔣介石Jiǎng Jièshí

1887 ~ 1975

대만

작가약력

  • 중화민국(타이완) 총통을 역임한 대만의 정치가.

작가 소개

저장성[浙江省] 펑화현[奉化縣]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중정[中正]이다. 그의 집안은 소금사업을 하였으나 9세 때 아버지의 사망으로 집안은 어려움에 처했다. 어려서부터 전통적인 중국의 사상을 배웠으며 청소년기에는 영어와 과학 등 신교육을 받았다. 1906년 바오딩[保定]군관학교에 입학하고 다음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1911년까지 일본 군대에서 근무하였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중국으로 돌아와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하였고, 청나라를 타도하여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는데 노력했다. 1918년 쑨원[孫文]의 휘하에 들어가 주로 군사 방면에서 활약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제1차 국공합작 때는 1923년 소련을 방문하여, 적군(赤軍)에 대해 연구하였다. 장제스는 혁명을 위해서는 강한 군사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24년 황푸군관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을 지냈다. 1926년 중산함사건을 계기로 국민당의 권력을 장악했으며 국민당 내 좌파세력을 척결하면서 국민혁명군 총사령에 취임하였다. 장제스가 주도하는 국민당은 중국 북부에 있는 군벌들을 제압하기 위해 북벌을 개시하였다.
1927년 상하이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을 제거하였으며 1928년 베이징[北京]을 점령하였다. 난징[南京] 국민정부 주석과 육·해·공군 총사령이 되어 당과 정부의 지배권을 확립하였으며, 중국 국가 주석으로 취임하였다. 한편으로는 광둥[廣東]·광시[廣西]의 군벌들과 펑위샹[馮玉祥]·옌시산[閻錫山] 등 지방군벌을 누르고, 1930년부터는 5회에 걸쳐 대규모 중국공산당 포위전을 수행하였다. 또한 만주사변 후 일본의 침공에 대해서는 ‘우선 내정을 안정시키고 후에 외적을 물리친다.’는 방침을 세워 군벌을 이용, 오로지 국내통일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내전정지(內戰停止) 일치항일(一致抗日)’을 외치는 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1936년 독전(督戰)을 위하여 시안[西安]에 갔다가 장쉐량[張學良] 군대에 감금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1937년 제2차 국공(國共)합작으로 육·해·공군 총사령관의 책임을 맡고 전면적인 항일전을 개시하였다. 항일전쟁 중에는 국민정부 주석, 국민당 총재, 군사위원회 주석, 육·해·공군 대원수 등의 요직을 겸직하여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946년 다시 중국공산당과 결별하고 내전을 개시하였다. 처음에는 우세하였으나 1949년 12월 완전히 패퇴하여 본토로부터 타이완[臺灣]으로 정부를 옮겨 미국과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고, ‘자유중국’ ‘대륙반공’을 제창하며 중화민국 총통과 국민당 총재로서 타이완을 지배하였다.
장제스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인정하고 독립을 위해 지원하였으며,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그의 의도는 배제되었다. 195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원한 공로가 인정되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저서에 《장중정전집(蔣中正全集)》(상·하권) 《장총통언론휘편(蔣總統言論彙編)》(24권) 등이 있다.
출처/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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