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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李泰圭Lee TaeKyoo
1932 ~ 1982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사항
- 서울대학교 미대 중퇴
- 통영 최초의 서양화가 김용주 문하에서 수학
- 전시 이력
- 1967, 제1회 개인전, 호심다방
- 1968, 제2회 개인전, 호반다방
- 1977, 이태규 도독 기념전, 부산 현대 화랑
- 1981, 귀국전, 마산 진화랑
- 그 외 개인전, 초대전 등 다수 전시
- 수상 내역
- 1971, 제20회 국전 입선
- 1972, 제21회 국전 입선
- 1973, 제22회 국전 입선
작가 소개
이태규는 1932년 5월 26일 산양면 삼덕리 궁항마을 746번지 출생으로 산양초교와 통영중·고, 서울대학교 미대를 중퇴하고 통영 최초의 서양화가 김용주 문하에서 수학했다. 통영고와 통영여고를 비롯한 통영지역과 진주, 산청, 남해 등에서 교편생활을 하면서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1967년 호심다방에서 개인전을 시작으로 1968년 호반다방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가졌고, 1971년 제20회 국전에서 입선을 필두로 1972년 제21회, 1973년 제22회 국전 입선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후에도 몇 번의 개인전과 초대전 등을 가진 바 있다. 1977년 부산 현대 화랑에서 이태규 도독 기념전을 성황리에 가진 후 독일로 건너가 유럽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견문을 넓힌 동시에 유럽의 풍경들을 스케치, 1981년 마산 진화랑에서 귀국전을 가지는 등 온 인생을 화업에만 몰두하다 1982년 4월 6일 작고했다.
이태규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창작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인 김용주와 이중섭에 대한 흠모의 정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이처럼 아름다운 통영을 그림의 소재로 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상적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그의 뇌리 속에 각인된 바다의 인상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고 있듯이 짙푸른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통영과 그 주변의 섬들이 지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이었으리라. 이는 응당 그럴 수 있는 일이자 필연적인 일임은 물론 통영인으로서의 운명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비록 화가로서의 생애는 짧을지언정 ‘이태규’라는 이름의 화가는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통영의 현대미술의 굳건한 초석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가 교사생활을 통해 길러낸 적지 않은 제자들이 오늘날의 통영화단을 비옥하게 만드는 토양이 되고 있기에 그렇다.
1967년 호심다방에서 개인전을 시작으로 1968년 호반다방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가졌고, 1971년 제20회 국전에서 입선을 필두로 1972년 제21회, 1973년 제22회 국전 입선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후에도 몇 번의 개인전과 초대전 등을 가진 바 있다. 1977년 부산 현대 화랑에서 이태규 도독 기념전을 성황리에 가진 후 독일로 건너가 유럽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견문을 넓힌 동시에 유럽의 풍경들을 스케치, 1981년 마산 진화랑에서 귀국전을 가지는 등 온 인생을 화업에만 몰두하다 1982년 4월 6일 작고했다.
이태규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창작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인 김용주와 이중섭에 대한 흠모의 정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짐작된다.
이처럼 아름다운 통영을 그림의 소재로 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상적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그의 뇌리 속에 각인된 바다의 인상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고 있듯이 짙푸른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통영과 그 주변의 섬들이 지어내는 아름다운 풍광이었으리라. 이는 응당 그럴 수 있는 일이자 필연적인 일임은 물론 통영인으로서의 운명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비록 화가로서의 생애는 짧을지언정 ‘이태규’라는 이름의 화가는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통영의 현대미술의 굳건한 초석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가 교사생활을 통해 길러낸 적지 않은 제자들이 오늘날의 통영화단을 비옥하게 만드는 토양이 되고 있기에 그렇다.
출처/한산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