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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 이시수 慕亭 李蓍秀Lee SiSu
1790 ~ 1849
조선
작가약력
- 1790(정조 14)~1849(헌종 15). 조선 후기의 유생.
작가 소개
본관 고성(固城). 자는 경원(景園), 호는 모정(慕亭).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용헌(容軒) 이원(李原)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평지옹(平地翁) 이헌복(李憲復), 아버지는 생원 이주령(李周齡),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권학도(權學度)의 딸이다.
이시수의 집은 본래 안동이지만, 이시수가 태어난 곳은 외갓집이 있는 현재의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이다. 이시수는 배움에 독실하여 류범휴(柳範休)와 류심춘(柳尋春)에게 배웠으며, 약관에 이미 사림에 명성이 알려졌다. 1812년(순조 12) 아버지 이주령이 과거 보러 갔던 길에 한양에서 세상을 떠나자, 이시수는 과거 공부에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전심하였다. 또한 이시수는 부친상을 당하여 상사 범절을 맡아 돌보아 준 김희수(金羲壽), 이가순(李家淳), 류철조(柳喆祚) 등의 은혜를 잊지 않고 죽을 때까지 아버지처럼 섬겼다.
1818년에 많은 석학 선비들이 모인 귀계서원(龜溪書院) 회강(會講)에서 아직 청년 선비임에도 동작이 안상(安詳)하고 강석(講釋)이 정명(精明)하여 당대의 명망 있는 선비들이 모두 공경하였다. 1834년 부로(父老)의 뜻을 좇아 천곡서숙(泉谷書塾)에서 후진을 가르쳤다. 1842년(헌종 8) 경상감사 이경재(李景在)가 학행을 듣고 조정에 천거하자 이를 알고 즉시 벼슬에 뜻이 없음을 보였다. 1843년 사림에서 『퇴계집(退溪集)』을 중간(重刊)하고자 봉정사(鳳停寺)에 모여 편찬과 교정을 진행하자, 이시수도 그 일에 참여하였다.
문집으로 『모정집(慕亭集)』이 있으며,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다.
묘소는 안동부 남쪽 천평(泉坪) 사좌(巳坐)의 언덕에 있었다. 김흥락(金興洛)이 행장을 지었다.
이시수의 집은 본래 안동이지만, 이시수가 태어난 곳은 외갓집이 있는 현재의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이다. 이시수는 배움에 독실하여 류범휴(柳範休)와 류심춘(柳尋春)에게 배웠으며, 약관에 이미 사림에 명성이 알려졌다. 1812년(순조 12) 아버지 이주령이 과거 보러 갔던 길에 한양에서 세상을 떠나자, 이시수는 과거 공부에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전심하였다. 또한 이시수는 부친상을 당하여 상사 범절을 맡아 돌보아 준 김희수(金羲壽), 이가순(李家淳), 류철조(柳喆祚) 등의 은혜를 잊지 않고 죽을 때까지 아버지처럼 섬겼다.
1818년에 많은 석학 선비들이 모인 귀계서원(龜溪書院) 회강(會講)에서 아직 청년 선비임에도 동작이 안상(安詳)하고 강석(講釋)이 정명(精明)하여 당대의 명망 있는 선비들이 모두 공경하였다. 1834년 부로(父老)의 뜻을 좇아 천곡서숙(泉谷書塾)에서 후진을 가르쳤다. 1842년(헌종 8) 경상감사 이경재(李景在)가 학행을 듣고 조정에 천거하자 이를 알고 즉시 벼슬에 뜻이 없음을 보였다. 1843년 사림에서 『퇴계집(退溪集)』을 중간(重刊)하고자 봉정사(鳳停寺)에 모여 편찬과 교정을 진행하자, 이시수도 그 일에 참여하였다.
문집으로 『모정집(慕亭集)』이 있으며,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다.
묘소는 안동부 남쪽 천평(泉坪) 사좌(巳坐)의 언덕에 있었다. 김흥락(金興洛)이 행장을 지었다.
출처/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