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경상북도 영덕(盈德) 사람이다. 1919년 3월 19일 창수면 창수동(蒼水面蒼水洞)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신기동(新基洞) 구장 이현설(李鉉卨)과 이수각(李壽珏)·이현우(李鉉祐)·권재형(權在衡) 등이 영해읍(寧海邑)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영해로 가던 도중 이곳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지역은 도로공사로 인해 일제에 전답을 강제로 수탈당한 농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시위군중은 곧 1백 50여명으로 증가되었다. 이때 그도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하여 오후 4시경 창수주재소에 이르렀는데, 이때의 시위군중은 4백여 명으로 늘어났다. 여기서 그는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주재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기물과 서류를 파기한 후, 객사 및 주임순사 고목이삼랑(高木伊三郞)의 숙소와 소유물, 조선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권찬규(權燦奎) 등의 비품을 빼앗아 파기하였다. 또한 장총 3정과 대검 2개를 파기한 후, 일본인 순사의 가구·의류·식기까지도 완전히 때려 부수고, 오후 7시경 자진 해산하였다. 그 후 그는 일제의 대대적인 검속 때 체포되었으며, 이해 7월 11일 대구(大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공무집행 방해·건조물 손괴·기물 손괴·공문서 훼기 및 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공훈전사사료관
작가의 경매 작품
제 46회 장터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