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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월 일운 스님 潭月 一耘IlUn Buddhist Monk
1924 ~ 2007
한국
작가약력
- 1924년 충남 청양 출생
- 1936년 묘향산 보현사에서 월봉화상을 은사로 득도
- 1943년 보현사강원 대교과 졸업
- 1945년 서울 대원강원 수의과 졸업
- 1950년 가야총림 해인사강원 부산 범어사강원 강사
- 1961년 속초 신흥사주지
- 1966년 간성 건봉사주지
- 1970년 서울 칠보사주지
- 1978년-2007년 제천 백련사에 주석
- 2007년 제천 백련사에서 입적. 세수 86세, 법랍 76세
- 저서 <불자요람> <불법의 양식> <담월스님 수상집> 등
작가 소개
법호는 담월(潭月). 법명은 일운(一耘). 1924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1941년 묘향산 보현사에서 월봉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보현사 강원 대교과를 마친 후 1945년 대원강원 수의과를 졸업했다. 1955년 가야총림 해인사 강원 강사와 부산 범어사 강원 중강을 지냈으며, 1961년 속초 신흥사 주지, 1966년 간성 건봉사 주지, 1970년 서울 칠보사 주지를 역임하고 1978년부터 제천 백련사에서 주석해왔다. 조계종 원로의원 벽암 스님,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 대구 관음사 주지 원명 스님이 통도사 극락선원과 해인사 강원 등에서 함께 수행했던 도반이다. 2007년 7월 6일 오후 6시30분 백련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86세 법랍 76세.
일운 스님은 손수 절터 닦고 돌을 나르며, 신도들의 시주금을 극구 마다하며 억척스럽게 지금의 백련사를 중창하였다. 스님을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스님을 청빈하고 수행에 철저한 스님이라고 말한다. 온갖 병고로 지칠 대로 지친 몸이지만 좌선과 경전공부를 놓지 않을 정도로 용맹정진이 몸에 배여 있었다. 신도들에게는 자상하지만 공부하는 스님들에게는 엄하기로 소문이 나 있어 상좌가 15명이나 되지만 모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여겨 아예 발걸음도 못하게 할 정도다. 백련사는 1950년 6.25전쟁으로 파손된 것을 1957년에 중건하였다. 1976년 수해로 대웅전이 무너지자 이듬해 돌로 축대를 쌓았으며, 1979년 법당을 중창하였다. 이후 1995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한때는 산내 암자로 미륵사와 신흥사·천수암·은적암·청련암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한국전쟁 후 가람이 모두 소실된 천년 고찰을 지금의 정갈한 가람으로 만들기 까지 일운 스님의 불사와 노력이 있었다.
일운 스님은 손수 절터 닦고 돌을 나르며, 신도들의 시주금을 극구 마다하며 억척스럽게 지금의 백련사를 중창하였다. 스님을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스님을 청빈하고 수행에 철저한 스님이라고 말한다. 온갖 병고로 지칠 대로 지친 몸이지만 좌선과 경전공부를 놓지 않을 정도로 용맹정진이 몸에 배여 있었다. 신도들에게는 자상하지만 공부하는 스님들에게는 엄하기로 소문이 나 있어 상좌가 15명이나 되지만 모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여겨 아예 발걸음도 못하게 할 정도다. 백련사는 1950년 6.25전쟁으로 파손된 것을 1957년에 중건하였다. 1976년 수해로 대웅전이 무너지자 이듬해 돌로 축대를 쌓았으며, 1979년 법당을 중창하였다. 이후 1995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한때는 산내 암자로 미륵사와 신흥사·천수암·은적암·청련암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한국전쟁 후 가람이 모두 소실된 천년 고찰을 지금의 정갈한 가람으로 만들기 까지 일운 스님의 불사와 노력이 있었다.
출처/불교신문, 디지털제천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