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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응 黃圭應Hwang KyuEung
1928 ~ 2004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사항
- 중동중학교 졸업·춘천사범 강습과 수학
- 기관 경력
- 강동초등학교(강릉)·내성초등학교(부산)·좌천초등학교(부산) 교사 재직
- 6.25 이후 청년방위대 문관 복무·27년간 경찰 형사 재직·퇴임(50세)
- 1996, 제12회 한국수채화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 군록회·이수회·한국미술협회·한국수채화협회 회원
- 부산수채화협회 고문 역임
- 전시 이력
- 1959, 군록회전
- 1960, 제1회 개인전, 수선화다방
- 1961, 부산미술협회전, 부산상공회의소
- 1961, 제1회 경남재건예술제미술전, 부산상공회의소
- 1962, 제1회 앙데팡당전, 부산공보관
- 1970, 제2회 개인전, 보리수다방
- 1973, 제3회 개인전, 통일다실
- 1977, 제4회 개인전, 성림다방
- 1979, 부산수채화협회전
- 1981, 부산미술제
- 1983~1986, 부산미술대전 초대작가전(제9회~제12회)
- 1986~1987, 한·일 수채화교환전
- 1986, 부산문예진흥기금조성초대전, 부산시민회관
- 1987, 한국수채화협회전, 한국프레스센터
- 1987, 제2회 아세아수채화연맹전, 대북시립미술관
- 1988~1992, 아세아수채화연맹전
- 1990, 제2회 영호남 원로미술인 초대전, 부산시민회관
- 1991, 제5회 개인전, 창원갤러리
- 1991, 움직이는 미술관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92, 부산 원로작가전, 용두산전시관
- 1994, 황규응·박광식 2인 초대 수채화전, 갤러리현대
- 1994, 작은사랑 그림전, 대구시민회관
- 1994, 부산미술 50년전, 국제신문사
- 1995~1996, 파스텔 작가회전 초대 출품, 부산시민회관
- 1995, 부산미술의 흐름(1960년대)전, 용두산전시관
- 1996, 부산미술의 흐름(1970년대)전, 용두산전시관
- 1996, 한국수채화100주년기념전, 전국순회전시
- 1996, 제12회 아세아수채화연맹전, 말레이시아 메이뱅크미술관
- 1997~2001, 대한민국원로작가초대전, 서울시립미술관
- 1997, 제6회 개인전, 타워갤러리
- 1999, 제7회 개인전, 강갤러리
- 2000, 제8회 개인전, 미광화랑
- 2001, 제9회 개인전, 미광화랑
- 2001, 부산미술의 조형적 계보 찾기 I, 부산시립미술관
- 2001, 이수회 창립전, 동아갤러리
- 2004, 제10회 개인전, 피카소화랑
- 2016, 황규응 회고전, 미광화랑
- 수상 내역
- 1949, 제2회 부산미술전람회 입선(민주중보사 주최)
작가 소개
황규응은 양달석(梁達錫), 김윤민(金潤珉) 등으로 대표되는 부산, 경남의 초창기 근대화단에서 이룩한 지역의 향토적 근대성의 화맥을 이어나간 거의 마지막 지점의 작가이며, 특히 수채화가로서는 앞으로 더 이상은 출현할 수 없는, 이 지역 최후의 근대기 화가다. 그가 생전 1990년대 이전에 그린 해운대와 동백섬의 풍경 속에는 아직 마린시티의 빌딩 숲들도, 장려(壯麗)한 광안대교도 보이지 않는다. 낭만적 정감과 사실적 현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그의 회화 속에서 부산이 가진 전통적 해양의 정취와 생활의 자취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데, 마치 단원(檀園)의 풍속화가 조선 후기의 현실과 생활상을 지금의 우리들에게 핍진하게 전달해 주었듯이, 그의 수채화 역시도 앞으로 세월이 많이 흘러가면 항도 부산의 20세기 하반(下半)의 면모들을 이곳 후인(後人)들에게 생생하게 펼쳐 보여주게 될 것이다.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황규응 수채의 미적 핵심은 맑음과 담백함에 녹아있다기보다는 걸쭉함과 구수함을 따라갔다는 데에 있다. 불국사 탑파들이나 석굴암 조각상 그리고 사군자에서 볼 수 있는 귀족적, 선비적 미감보다는 운주사 천불천탑이나 고려 철불 그리고 민화에서 볼 수 있는 호족적, 서민적 미감에 가깝다. 세련(洗練)의 미감이 아닌 조야(粗野)의 미감, 관(官)의 미감이 아닌 민(民)의 미감을 계승하고 있는 그의 수채화는 일견 엉성해 보이는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에 기반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아마추어리즘은 번쩍이는 기교를 뽐내듯 밖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담담한 순정을 다소곳이 안으로 감추는 모양새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대상을 바라보는 본연한 시선과 대상을 향하는 간절한 사랑에 더욱 긴밀하게 맞닿아 있기에, 오히려 고도로 치밀한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의 경지가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다.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황규응 수채의 미적 핵심은 맑음과 담백함에 녹아있다기보다는 걸쭉함과 구수함을 따라갔다는 데에 있다. 불국사 탑파들이나 석굴암 조각상 그리고 사군자에서 볼 수 있는 귀족적, 선비적 미감보다는 운주사 천불천탑이나 고려 철불 그리고 민화에서 볼 수 있는 호족적, 서민적 미감에 가깝다. 세련(洗練)의 미감이 아닌 조야(粗野)의 미감, 관(官)의 미감이 아닌 민(民)의 미감을 계승하고 있는 그의 수채화는 일견 엉성해 보이는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에 기반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아마추어리즘은 번쩍이는 기교를 뽐내듯 밖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담담한 순정을 다소곳이 안으로 감추는 모양새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대상을 바라보는 본연한 시선과 대상을 향하는 간절한 사랑에 더욱 긴밀하게 맞닿아 있기에, 오히려 고도로 치밀한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의 경지가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다.
출처/아트허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