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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동 朴水東Park SooDong

1941 ~

한국

만화

작가약력

  • 대한민국 만화가. <고인돌>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작가 소개

박수동은 1941년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났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와 부산사범대학교를 졸업했다. 독학으로 만화를 공부했고 1965년 대중잡지 [아리랑]의 신인만화가 공모전에 준당선하면서 입문했다. 대학 졸업 후 경남 밀양에서 교직생활을 하던 박수동은 만화에 대한 열망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상경한다. 만화를 그렸지만 생활고를 넘지 못했고 다시 교사가 됐지만 만화에 대한 열망을 죽이지 못했다. 다시 사표를 낸 박수동은 1967년 [경향신문]에 시사만화가로 입사한다.
생활고와 만화에 대한 열망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월급 받는 만화가’가 된 셈이다. 문제는 그 자리가 <두꺼비> 안의섭이 [조선일보]로 옮기면서 생겼다는 점이다. 안의섭은 당시 <고바우> 김성환과 시사만화계의 양대 거목이었다. 만화계 입문 2년차에게는 다시 올 수 없는 천복이었으나 거목의 뒷자리를 채우는 일은 천벌과도 같았을 터. 박수동의 첫 4칸 시사만화 ‘박고구’는 <두꺼비>의 무게를 벗어내지 못했고 결국 자리를 비우게 된다. 후임으로는 브시 밀러의 <낸시>가 해외특약으로 게재됐다.
신문사를 나온 박수동은 다시 잡지사로 자리를 옮겼고 이곳에 다니면서 1974년 대중잡지 [선데이서울]에 <고인돌>을 연재한다. <고인돌>은 미국의 연재만화가 조니 하트의 에서 착안됐다.[선데이서울]은 당대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통속성을 표방했고 성표현물에 대해 높은 의미와 가치를 부여했다. 가부장 사회의 사내이자 직장인이었던 박수동은 <고인돌>을 통해 자신의 갈증과 갈망을 속 시원하게 그려냈고 단번에 주목 받는 만화가로 떠오른다. 전업 만화가를 선언한 박수동은 억눌려있던 창작본능을 발산하며 1974년 <소년고인돌> <5학년5반 삼총사> <별똥 탐험대>를 차례로 발표한다.
신문만화, 성인만화를 거쳐 만화시장의 메인스트림이라 할 수 있는 아동만화 시장에 본격 진입하면서 1975년 <번데기야구단>, 1976년 <신판 오성과 한음>을 발표하며 명성을 쌓았다. <와이프행진곡> 등 성인만화 분야의 창작도 지속하면서 성인과 아동을 아우르는 인기 만화가의 반열에 오른다. 당대 최고 스타였던 만화가 길창덕과 함께 80년대 가장 많은 매체에 원고를 게재한 작가로 뽑히기도 했다.
1992년 한국만화문화대상을 수상했고 2003년 고바우만화상, 2005년 SICAF어워드 만화부문 대상 등을 받았다. 2001년부터 전주대학교 영상예술학부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고 2010년 <번데기야구단>의 후일담을 담은 웹툰 <번데기스>가 후배만화가 김경호에 의해 창작되기도 했다.
출처/한국만화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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