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이명은 이희수(李熙守)이며, 호는 벽소(碧笑)이다. 1881년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났으며, 서예와 문장실력이 뛰어났다.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다.
진도(珍島)에서 3·1운동 시위에 동참하였으며, 1920년 《동아일보》 순천지국 기자가 되었다. 1923년 6월 박병두(朴炳斗)와 함께 전라남도 최초의 사상단체인 순천연학회(順天硏學會)를 창립하였다. 1924년 1월 강태윤(姜泰允)·박병두(朴炳斗)·이창수(李昌洙)·박정래(朴正來) 등과 함께 순천무산자동맹회(順天無産者同盟會)를 창립하였다.
같은 해 서울에서 개최된, 조선노동연맹회와 조선노동대회 등 노동단체의 통합체인 조선노농총동맹 결성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화요회(火曜會)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이 되었다.
1925년 3월 박병두와 함께 경성에서 비밀리에 개최된 조선공산당 조직발기회에 참석하였으며 4월에 창당된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순천 야체이카(공산당 조직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러시아어) 책임자가 되었고, 같은 해 7월 을축년 대홍수의 이재민을 구제하기 위해 순천 지역의 사회단체와 함께 을축 수재구제회를 창립하였다.
1926년 6월 제2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 때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928년에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29년 4월 순천농민연합회가 순천농민조합으로 조직을 변경할 때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출처/두산백과
작가의 경매 작품
제 40회 장터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