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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구명 左丘明Zuo Qiuming

BC.502 ~ BC.422

중국 노

작가약력

  • 약 BC.502년 ~ 약 BC.422년 추정. 중국 춘추시대의 노(魯)나라 학자.

작가 소개

춘추시대 지금의 산둥(山東)에 위치한 노(魯)나라 도군(都君) 장(莊) 사람으로 성은 구(丘)이고, 이름은 명(明)이다.
강자아의 후예로 일찍이 노나라의 사관(史官)을 지내온 집안으로, 부친이 좌사관(左史官)을 지냈기 때문에도 좌구명(左丘明)으로 불리는데, 일설에는 성이 좌구(左丘)이며 이름은 명(明)이라 하고, 다른 설에는 성은 좌(左)이고 이름이 구명(丘明)이라고도 한다.
정확한 생몰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공자와 비슷한 무렵의 사람으로 본다. 『논어』에서는 그가 공자보다 연상인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사기』에는 좌구명이 시력을 잃었다는 ‘좌구실명(左丘失明)’이란 표현이 나타나며, 그를 맹좌(盲左)라고도 한다.
좌구명은 부친의 뒤를 이어 노나라의 태사관(太史官)을 지냈다. 천문, 지리, 문학, 역사 등에 박학다식하였으며 정치적 논의에도 밝았다. BC.513년, 노나라에서 중손씨(仲孫氏), 숙손씨(叔孫氏), 계손씨(季孫氏)를 중심으로 한 ‘삼환(三桓)의 난’이 일어나자 이들을 척결하고 군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며 간언하기도 하였다. 공자는 그의 강직함과 품성을 높이 샀는데, 『논어』 「공야장편(公冶長篇)」에 “원망을 숨기고서 그 사람과 친구로 지내는 것을 좌구명이 부끄럽게 여기더니, 나도 또한 부끄러워하노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좌구명은 사관으로 지내면서 사서(史書) 편찬에 기여했다. 『좌씨전』, 『국어』가 그의 저서로 알려져 있다. 『춘추』를 해석하여 지은 『좌씨전』은 좌구명의 관직생활에 있어 최대의 성과로서 중국사상사, 사학사, 문학사와 예술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국어』는 『좌씨전』을 쓰기 위하여 각국의 역사를 모아 찬술(撰述)한 것으로, 춘추시대 8국의 역사를 담고 있다. 그러나 좌구명의 생몰연이 확실하지 않은 만큼 그의 저술에 대한 의혹도 적지 않다. 당나라 유종원이 『비국어(非國語)』를 지어 『국어』의 진위여부를 고증하자 송나라의 강단례(江端禮)는 『비비국어(非非國語)』를 지어 이를 반박했다. 청나라 말기의 학자 강유위는 『춘추좌씨전』은 유흠의 위작(僞作)이라 주장하기도 하였다.
출처/중국인물사전

작가의 경매 작품

제 37회 장터경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