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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李鳳周Lee BongJu

1926 ~

한국

공예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鍮器匠)

작가약력

작가 소개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기능보유자인 이봉주는 1926년에 납청(納淸)에서 약 8km 떨어진 평북 정주군 덕언면에서 모친이 놋성기 장사로 생계를 이었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납청 출신이지만 고향에선 정작 방짜유기 제작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었고, 해방 후 22세 때인 1948년에 월남하여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납청 방짜유기 공장을 크게 하던 탁창여의 양대공장에 입사하여 기능을 익히기 시작했다. 탁창여는 아내의 이모부였고 이러한 인연으로 방짜 유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57년에는 구로동에 자신이 직접 ‘평부양대유기공장’을 설립하여 대장겸 점주 그리고 경영까지 하여 생산 기술자인 동시에 판매자까지 겸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 말부터 생활문화가 변하면서 연탄을 집집마다 사용하게 되자 연탄가스에 쉽게 변색되는 유기는 심한 타격을 받게 된다. 계속되는 불경기로 공장도 문을 닫고 만다. 그 뒤 노동판에 나가기도 하고 물고기를 잡으러 다니기도 했는데 마음을 잡지 못하고 다시 1960년말 공방을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이때는 잘 팔리지 않는 그릇 대신 징이나 꽹과리와 같은 악기를 주로 만들었다. 마침 대학가에서 농악이 붐을 일으키던 때라 잘 팔려나갔다.
이봉주는 1978년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으로 이주하여 진유공사를 세워 공장 시설을 개량하고 계속 양대유기를 제작하였다. 1982년 전승공예대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인 1983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의 방짜유기 부문의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반상기를 방짜로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하였다. 인체에 나쁜 성분을 만나면 변색되는 효능이 알려지고 언론에 소개되면서 방짜그릇을 찾는 사람이 점점 늘어갔다.
1994년에는 안산 시화공단으로 확장 이전하여 각종 방짜유기를 생산하였다. 이후 경북 문경시에 ‘납청방짜유기전수관’을 짓고 후진양성과 작품활동에 정진하여 왔다. 이 주변은 고향인 납청처럼 소나무 숲이 많고, 논은 적어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할 수 없는 지역이다. 이런 이유로 청년들에게 유기 제작 기술을 가르쳐 유기가 산촌의 주된 사업으로 성장하게 되면, 결국 납청마을과 같이 지역민들의 생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고 유기마을로 키워가고 있다. 아들인 이형근이 전수교육조교로 활동하며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출처/한국문화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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