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검색
- Service
- 작가검색
이사벨라 버드 비숍 Isabella L. Bird Bishop
1831 ~ 1904
영국
작가약력
- 영국 잉글랜드 출신의 여행가·지리학자·작가.
작가 소개
이사벨라 루시 버드(Isabella Lucy Bird) 또는 결혼 후 이름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1831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목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독실한 기독교적 가정교육을 받았으며, 사촌들이 페르시아와 인도 등의 선교사였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외국에 관한 견문을 늘 들으며 성장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병약하여 척추질환, 불면증, 무력감 등은 평생 그녀를 괴롭혔다. 몸이 늘 허약하고 정신 질환 때문에 고생하게 되자 의사는 그에게 장기 선박여행을 권유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그녀의 일생은 역마살이 낀 사람처럼 세계를 돌아다니게 된다.
그녀가 처음 찾아간 곳은 캐나다와 북미였다. 본시 글재주가 많았던 그녀는 이때의 체험을 〈미국에 온 영국여인(The English Woman in America)〉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고, 이 책이 어느 정도 팔리게 되자 그녀는 글과 여행을 자신의 본업처럼 여기며 살게 되었다. 부친이 사망하자 모친과 동생 헨리에타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로 이주하였는데 이주 후에도 17세기의 영국 시인 존 던의 시와 침체된 학교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면서 스코틀랜드 서안의 헤브리디스 제도를 탐험했다.
1872년 그녀는 뉴질랜드로 건너갔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와이(당시 샌드위치 제도)로 이주했는데 하와이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동안 그녀를 괴롭혀 왔던 갖가지 질병이 차도를 보이게 되어 여행과 함께 하는 삶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샌드위치 제도에서 보낸 여섯 달(Six Months in the Sandwich Islands)〉을 썼으며 세계 최대의 화산인 마우나로아(Mauna Loa)를 등정했다. 1873년 이사벨라는 하와이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로키 산맥을 여행했고,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인 〈로키 산맥 속의 숙녀 생활(A Lady´s Life in the Rocky Mountains)〉을 출판하였다.
잠시 영국으로 돌아갔던 그녀는 여행을 하지 않자 다시 건강이 나빠지게 되어 다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때 돌아다닌 곳이 일본의 홋카이도와 서말레이시아 지역 등이었고, 이 여행에 대해서는 〈일본의 망가지지 않은 길들 (Unbeaten Tracks in Japan)〉과 〈황금빛 반도(The Golden Chersonese)〉에 잘 나타나 있다.
1881년 50세의 나이로 10살 연하인 주치의 존 비숍 박사와 결혼하였으나 5년 후인 1886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의학을 배우고, 성공회 선교사가 되어 다시 길을 떠났다. 고령의 나이로 티베트와 인도의 라다크, 페르시아와 쿠르디스탄의 사막을 여행하고, 이 여행으로 인해서 그녀는 유명해지게 되어 1892년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영국왕립지리학협회 (Royal Geographic Society)의 회원이 되었다. 당시의 놀라운 탐험 기록이 〈페르시아와 쿠르디스탄 여행(Journey in Persia and Kurdistan)〉을 비롯하여 〈티베트 사람들 사이에서(Among the Tibetans)〉 등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특히 청일 전쟁이 일어난 1894년부터 1897년까지 네 차례나 조선을 방문하여 11개월에 걸쳐 한국과 한국인들이 이주한 시베리아 지방을 직접 찾아가는 현지 조사를 했는데,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은 이 당시의 기록이다. 이 책의 머리글에서 그녀는 “나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내가 여행한 나라들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곧 청일 전쟁 동안 한국의 운명들을 깨달으며 이 나라에 대해 참으로 강렬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또 시베리아의 러시아 정부 아래 있는 한국인 이주자들의 현황을 보았을 때 나는 미래에 있을 이 나라의 더욱 큰 가능성에 대해 눈을 크게 뜨게 되었다. 한국에 머무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이 나라가 처음에 안겨주는 찝찝한 인상들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강렬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라고 썼다.
그녀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돌아와 일흔의 나이로 또다시 여행을 떠나 자신의 마지막 여행지인 모로코를 방문하였고, 이 여행 후에도 다시 중국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으나 1904년 에든버러에서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그녀의 삶은 빅토리아 여왕 시기의 영국 여성들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녀가 처음 찾아간 곳은 캐나다와 북미였다. 본시 글재주가 많았던 그녀는 이때의 체험을 〈미국에 온 영국여인(The English Woman in America)〉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고, 이 책이 어느 정도 팔리게 되자 그녀는 글과 여행을 자신의 본업처럼 여기며 살게 되었다. 부친이 사망하자 모친과 동생 헨리에타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로 이주하였는데 이주 후에도 17세기의 영국 시인 존 던의 시와 침체된 학교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쓰면서 스코틀랜드 서안의 헤브리디스 제도를 탐험했다.
1872년 그녀는 뉴질랜드로 건너갔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와이(당시 샌드위치 제도)로 이주했는데 하와이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동안 그녀를 괴롭혀 왔던 갖가지 질병이 차도를 보이게 되어 여행과 함께 하는 삶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샌드위치 제도에서 보낸 여섯 달(Six Months in the Sandwich Islands)〉을 썼으며 세계 최대의 화산인 마우나로아(Mauna Loa)를 등정했다. 1873년 이사벨라는 하와이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로키 산맥을 여행했고,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인 〈로키 산맥 속의 숙녀 생활(A Lady´s Life in the Rocky Mountains)〉을 출판하였다.
잠시 영국으로 돌아갔던 그녀는 여행을 하지 않자 다시 건강이 나빠지게 되어 다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때 돌아다닌 곳이 일본의 홋카이도와 서말레이시아 지역 등이었고, 이 여행에 대해서는 〈일본의 망가지지 않은 길들 (Unbeaten Tracks in Japan)〉과 〈황금빛 반도(The Golden Chersonese)〉에 잘 나타나 있다.
1881년 50세의 나이로 10살 연하인 주치의 존 비숍 박사와 결혼하였으나 5년 후인 1886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의학을 배우고, 성공회 선교사가 되어 다시 길을 떠났다. 고령의 나이로 티베트와 인도의 라다크, 페르시아와 쿠르디스탄의 사막을 여행하고, 이 여행으로 인해서 그녀는 유명해지게 되어 1892년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영국왕립지리학협회 (Royal Geographic Society)의 회원이 되었다. 당시의 놀라운 탐험 기록이 〈페르시아와 쿠르디스탄 여행(Journey in Persia and Kurdistan)〉을 비롯하여 〈티베트 사람들 사이에서(Among the Tibetans)〉 등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특히 청일 전쟁이 일어난 1894년부터 1897년까지 네 차례나 조선을 방문하여 11개월에 걸쳐 한국과 한국인들이 이주한 시베리아 지방을 직접 찾아가는 현지 조사를 했는데,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은 이 당시의 기록이다. 이 책의 머리글에서 그녀는 “나는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내가 여행한 나라들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곧 청일 전쟁 동안 한국의 운명들을 깨달으며 이 나라에 대해 참으로 강렬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또 시베리아의 러시아 정부 아래 있는 한국인 이주자들의 현황을 보았을 때 나는 미래에 있을 이 나라의 더욱 큰 가능성에 대해 눈을 크게 뜨게 되었다. 한국에 머무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이 나라가 처음에 안겨주는 찝찝한 인상들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강렬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라고 썼다.
그녀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돌아와 일흔의 나이로 또다시 여행을 떠나 자신의 마지막 여행지인 모로코를 방문하였고, 이 여행 후에도 다시 중국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으나 1904년 에든버러에서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그녀의 삶은 빅토리아 여왕 시기의 영국 여성들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출처/위키백과,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