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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조 李承祚LEE SeungJio
1941 ~ 1990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 홍익대학교 서양화 학사
-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
- 기관 경력
- 1962년-1990년 오리진 그룹 창립동인
- 1972년-198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
- 1977년-1980년 한국 미술협회 이사
- 1981년-1988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조교수
- 1987년 제6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 1989년 제15회 서울현대미술제 운영위원
- AG 그룹 동인
- 전시
- 1963년-1970년, 오리진 동인전, 국립중앙공보관
- 1967년, 한국 청년작가 연립전, 국립중앙공보관
- 1968년, 현역작가 초대전, 경복궁 미술관
- 1968년-1969년, 한국 현대작가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0년-1977년, 상파울로 비엔날레, 상파울로
- 1970년, 아방가르드전, 국립중앙 공보관
- 1971년, 아방가르드전 쳔실과 실현, 국립현대미술관
- 1971년, 회화 오늘의 한국전, 명동 화랑
- 1971년, 아방가르드전 판화전, 국립중앙공보관
- ...
- 1988년, 한국 현대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8년, 현대회화 70년대의 흐름, 위커힐 미술관
- 1989년, 서울 현대 미술제 운영위원 5인전, 힐튼 미술관
- 1991년, 유작전, 호암 갤러리
- 1991년, 한국 현대미술의 한국성 모색 II부전, 한원 갤러리
- 1991년, 한국 현대미술의 한국성 모색 III부전, 한원 갤러리
- 1993년, 한국 현대미술 격정과 도전의 세대전, 토탈 미술관
- 1996년, 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전, 갤러리 현대
- 1996년, 유작전, 갤러리 서미, 토탈 미술관
- 1996년, 유작전, 갤러리 현대, 토탈 미술관
- 1997년, 김순권박사 후원 기금조성 특별전, 미 화랑
- 1997년,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전, 그로리치 화랑
- 1999년, 현대미술 50년: 1950-1999전, 국립현대미술관
- 2000년, 유작전, 부산 시립미술관
- 2001년, 요절과 숙명의 작가전, 가나 아트센터
- 2004년, 한국의 평면회화, 어제와 오늘, 서울 시립미술관
- 등 전시
- 수상
- 1968년, 동아국제전 대상
- 1968년-1970년, 제 17, 19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문공부장관상
- 1969년-1971년, 제 18, 20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특선
- 1975년, 깐느국제회화제 국가상
- 1980년,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상
작가 소개
이승조(1941-1990)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3년 ‘오리진(Origin)’ 그룹의 창립멤버로 참여했으며 1973년에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오리진 그룹은 앵포르멜(Informel)의 추상표현주의에 반(反)하여 반앵포르멜적, 반표현주의적 미술뿐만 아니라 본질적 조형요소에 충실한 미술을 지향했다. 《제1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68), 《제1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70)에서 문화공고부장관상을 수상했고 《제18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69), 《제20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71)에서 특선했다. ‘충만한 에너지의 절제된 조형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아온 이승조는 특히 《제7회 카뉴(Cagnes) 국제회화제》(1975)에서 국가상을 수상하였고, 제11회, 제14회 《상파울로 비엔날레》(1971, 1977)등 국제적인 전시회에서 절제된 균질감과 얽혀 등장하는 구조의 치밀성 및 긴장감을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1968년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기하학적 추상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이승조의 회화는 대체로 넓은 색면이 대비되는 구성을 보여주었으나, 《제1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68)의 문화공고부장관상 수상과 함께 자신의 독자적인 추상양식을 정립했다.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AG)의 창립 멤버로도 참여했던 1969년부터 이승조는 본격적인 자신만의 특징적인 회화, 일명 ‘파이프 회화’를 제작하였다. ‘파이프 회화’란 원통 형태를 화면 안에 늘어놓아 전체적으로 보면 평면적으로 보이도록 한 것으로 기하학적 형태를 다원적 공간 구성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단색의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로 변모하는데, 파이프의 기하학적 형태가 화면을 구획하게 된다. 이승조의 파이프 통은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기하학적 구축을 통해 순수한 색면화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조형요소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이르면 이전의 ‘파이프’ 이미지는 사라지고 규칙적으로 구획 지어진 단색의 색 띠만이 남는다. <핵 No.86-29>(1986)에서는 1980년대 이후 그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전의 입체적 공간 구성과 단일 색면적 구성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한 조형 세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규칙적인 단색 띠들은 단순히 화면의 구성적 요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능동적인 공간적 요소로 기능한다.
그는 1968년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기하학적 추상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이승조의 회화는 대체로 넓은 색면이 대비되는 구성을 보여주었으나, 《제1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68)의 문화공고부장관상 수상과 함께 자신의 독자적인 추상양식을 정립했다.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AG)의 창립 멤버로도 참여했던 1969년부터 이승조는 본격적인 자신만의 특징적인 회화, 일명 ‘파이프 회화’를 제작하였다. ‘파이프 회화’란 원통 형태를 화면 안에 늘어놓아 전체적으로 보면 평면적으로 보이도록 한 것으로 기하학적 형태를 다원적 공간 구성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단색의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로 변모하는데, 파이프의 기하학적 형태가 화면을 구획하게 된다. 이승조의 파이프 통은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기하학적 구축을 통해 순수한 색면화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조형요소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이르면 이전의 ‘파이프’ 이미지는 사라지고 규칙적으로 구획 지어진 단색의 색 띠만이 남는다. <핵 No.86-29>(1986)에서는 1980년대 이후 그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전의 입체적 공간 구성과 단일 색면적 구성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한 조형 세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규칙적인 단색 띠들은 단순히 화면의 구성적 요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능동적인 공간적 요소로 기능한다.
출처/국립현대미술관,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