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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 조규일 百民 曺圭逸Jo KyuIl
1934 ~
한국
서양화
작가약력
- 1934년 전남 보성 출생
- 1955년 조선대학교 문리과대학 미술학부 입학 / 진도중학교 미술교사 부임(1968년까지)
- 1958년 제 1회 개인전(진도)
- 1959년 제 8회 국전 입선‘웅뎅이’
- 1960년 제 9회 국전 입선‘옥뫼산 풍경’
- 1966년 제 2회 전남도미술전람회 특선‘침계루’
- 1967년 제 16회 국전 입선‘화엄사’
- 1968년 제 4회 전남도미술전람회 수석특선‘대흥사’ / 광주동성중 미술교사 부임(1973년까지)
- 1968년 광주상고(1989년까지)
- 1969년 제 6회 목우회 공모전 JP상 수상‘내장산’
- 1970년 제 6회 전남도미술전람회 우수상
- 1971년 제 7회 전라남도미술전람회 특선‘ 비아의 설경’
- 1972년 조규일 유화전 (광주Y살롱)
- 1973년 제 3회 지방작가 초대전(미술회관)
- 1976년 제 25회 국전 입선 ‘출항전’ / 전남도전 추천작가
- 1977년 제 26회 국전 특선‘정(鼎)’ / 조규일 개인전(광주 Y살롱)
- 1978년 제 27회 국전 입선‘ 쌍봉사’ / 프랑스 르싸롱전 한국대표 참가
- 1978년 유럽 8개국 순방(4개월간) / 전남예술회관 건립을 위한 호남미술전(신문회관)
- 1979년 제 28회 국전 특선 ‘솥 도매상’ / 전라남도 미술전람회 심사위원
- 1979년 전남일보(광주일보) 초대 유럽풍물전 / 구라파 풍경화집 출간
- 1981년 제 30회 국전 입선‘열화의 정’ / 조규일 작품전(남도예술회관)
- 1982년 목우회 전남지회장
- 1983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 1984년 중앙미술관 개관기념 서양화 55인초대전 / LA 모던아트 갤러리 개인전
- 1984년 국립현대미술관 ‘84현대미술초대전’
- 1985년 조규일 개인전(서울 롯데미술관)
- 1987년 국립 현대미술관 ‘87 현대미술초대전’
- 1988년 미주 동일당 미술관 초대 개인전 / KBS-TV미술관 방영
- 1989년 롯데미술관 초대 개인전 / 광주·전남 미술50년전 (조선대 미술관)
- 1991년 소련기행 스케치전 / 국추회 초대전(남봉미술관)
- 1992년 전남도전, 무등미술대전 운영위원
- 1993년 백민미술관 개관
- 1994년 한국의 자연대전(서울시립미술관)
- 1999년 전라남도 문화상 수상 /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 2003년 제 12회 오지호미술상 수상 / 광주광역시 문화예술상 수상
- 2004년 오지호미술상 수상기념 초대전(광주시립미술관)
- 2005년 프랑스 쇼몽시 초대전 / (사)목우회 고문
- 2006년 목우회 한불대표 구상작가 총람전( 서울 예술의 전당)
- 2006년 광주비엔날레 홍보자문위원 / 오지호 기념관 작품 기증
- 2007년 70년대 한국미술(예술의 전당) / 원진미육대상(圓眞美育大賞)수상
- 2007년 우즈베키스탄 목우회 국제교류전(국립현대미술관)
- 2008년 국제현대미술 특별기획전(백민미술관)
- 2008년 여수국제 아트페스티벌(여수 전남문예회관) / 광주비엔날레 자문위원
- 2009년 한일교류전(백민미술관)
작가 소개
전남보성 출신의 서양화가. 호는 백민(百民)이다.
조선대 문리과대학 미술학부에 수학했으며 진도중교사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중등학교 근무하다 50대 중반에 보성군립미술관을 개관하면서 전업작가로 활동해왔다.
조규일은 조선대학교 미술과에 다닐 때 오지호 화백과 인연을 맺은 그는 인상주의 바탕의 색채화가 오지호의 정신과 예술적 철학을 따르려고 노력했으며 백제의 백성이란 뜻의 ‘백민(百民)’이란 아호도 스승으로부터 받았다. 그는 평생을 서정적이고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현장감 넘치는 한국의 자연미를 화폭에 담았다. 꾸밈없는 무기교(無技巧)의 회화로 소박미가 넘친다. 눈앞에 펼쳐지는 대자연을 사실적 재현 이상의 회화적 형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색채적이고 서정적인 자연주의 예술로 승화 시켰다
특히 한국의 자연미에 대한 열정으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진도 제주 독도는 물론 금강산과 백두산까지 직접 다니며 현장의 감흥을 담았다. 그날의 빛과 색이 그림을 결정한다는 생각에서다.
그의 구상(具象)성은 단순히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자연에 담긴 뜻을 형태와 색채를 통해 구현해 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동화(同化)를 이끌고 있으며 감정이입이라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독특한 회화적 분위기를 이끌어내 낸다.
조규일의 그림은 몇 차례의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습작기인 초기에 아카데미즘에 충실한 작품으로 국전에서 2회 특선, 10회 입선하는 등 탄탄한 기초를 닦았다. 데생 훈련을 통해 얻어진 정확한 입체감각에 풍부한 색채를 덧입혀 조규일 회화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여인을 모티브로 강하고 고졸한 인물작업과 함께 강렬하고 감각적 색채로 마티스와 야수파의 초상화를 연상을 시키기도 했다. 후반으로 가면서 정물화에서는 원근법을 왜곡하면서 색채의 구축적 사용으로 세잔느 회화를 상기시키기도 했다.
그 뒤부터는 색과 빛의 조화를 구사해 인상주의 회화의 근간을 만들어 나갔다. 빛의 가시적 효과를 중시하면서도 대상에 대한 묘사는 원경으로 처리하거나 윤곽만을 드러내 감흥적인 회화로 변환하였다. 화면에 감각적인 색채에의 열광과 환희, 탐닉 두드러지고 자신의 색채감각을 해방시켜 나갔다.
세 번째 변화는 1979년 교직을 떠나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하면서 또 다른 그림세계 구축하게 되었다. 카자흐스탄, 사할린, 미국의 로키산맥 등을 답사하면서 한국의 빛과는 사뭇 다른 빛에 심취하기도 했다. 이 무렵의 그림은 스케치를 가미한 회화로써 이국적 분위기와 속도감을 전해주었다. 특히 카자흐스탄 시리즈는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시기의 작품은 두터운 마티에르가 사라지고 깔끔하게 정리된 화면이 특징을 이룬다.
조규일 회화가 몇 차례의 변주를 시도하지만 끝까지 변하지 않는 회회적 본질은 빛과 색에 대한 확신이다. 또 하나는 손으로 흙덩이를 만들어 토담을 쌓는 것처럼 지극히 진지하고 정직한 작업 태도다. 회화의 근본에서 흐트러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언제보아도 고결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단순한 구도와 선명한 색채의 필치로 그려지는 풍경은 보는 이들에게 평온하고 서정적인 감흥을 일깨운다. 한국 대자연의 영원한 생명감과 풍부한 변화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실감 있게 표현한 작품 등은 조규일 회화의 백미로 꼽힌다.
국전추천작가로서 국립현대미술관초대작가,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그의 예술세계가 KBS-TV미술관을 통해 방영된 바 있다.
한편, 조규일은 지난 1993년 본인의 작품을 비롯한 모든 소장 작품과 전 재산을 보성군에 기증함으로써 보성군립 백민미술관이 탄생한 것이다. 군립 미술관으로는 최초이며 보성군민을 비롯한 전남 동부지역의 문화센터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대 문리과대학 미술학부에 수학했으며 진도중교사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중등학교 근무하다 50대 중반에 보성군립미술관을 개관하면서 전업작가로 활동해왔다.
조규일은 조선대학교 미술과에 다닐 때 오지호 화백과 인연을 맺은 그는 인상주의 바탕의 색채화가 오지호의 정신과 예술적 철학을 따르려고 노력했으며 백제의 백성이란 뜻의 ‘백민(百民)’이란 아호도 스승으로부터 받았다. 그는 평생을 서정적이고 사실주의적인 기법으로 현장감 넘치는 한국의 자연미를 화폭에 담았다. 꾸밈없는 무기교(無技巧)의 회화로 소박미가 넘친다. 눈앞에 펼쳐지는 대자연을 사실적 재현 이상의 회화적 형상으로 표현함으로써 색채적이고 서정적인 자연주의 예술로 승화 시켰다
특히 한국의 자연미에 대한 열정으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진도 제주 독도는 물론 금강산과 백두산까지 직접 다니며 현장의 감흥을 담았다. 그날의 빛과 색이 그림을 결정한다는 생각에서다.
그의 구상(具象)성은 단순히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자연에 담긴 뜻을 형태와 색채를 통해 구현해 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동화(同化)를 이끌고 있으며 감정이입이라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독특한 회화적 분위기를 이끌어내 낸다.
조규일의 그림은 몇 차례의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습작기인 초기에 아카데미즘에 충실한 작품으로 국전에서 2회 특선, 10회 입선하는 등 탄탄한 기초를 닦았다. 데생 훈련을 통해 얻어진 정확한 입체감각에 풍부한 색채를 덧입혀 조규일 회화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여인을 모티브로 강하고 고졸한 인물작업과 함께 강렬하고 감각적 색채로 마티스와 야수파의 초상화를 연상을 시키기도 했다. 후반으로 가면서 정물화에서는 원근법을 왜곡하면서 색채의 구축적 사용으로 세잔느 회화를 상기시키기도 했다.
그 뒤부터는 색과 빛의 조화를 구사해 인상주의 회화의 근간을 만들어 나갔다. 빛의 가시적 효과를 중시하면서도 대상에 대한 묘사는 원경으로 처리하거나 윤곽만을 드러내 감흥적인 회화로 변환하였다. 화면에 감각적인 색채에의 열광과 환희, 탐닉 두드러지고 자신의 색채감각을 해방시켜 나갔다.
세 번째 변화는 1979년 교직을 떠나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하면서 또 다른 그림세계 구축하게 되었다. 카자흐스탄, 사할린, 미국의 로키산맥 등을 답사하면서 한국의 빛과는 사뭇 다른 빛에 심취하기도 했다. 이 무렵의 그림은 스케치를 가미한 회화로써 이국적 분위기와 속도감을 전해주었다. 특히 카자흐스탄 시리즈는 개인전을 열었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시기의 작품은 두터운 마티에르가 사라지고 깔끔하게 정리된 화면이 특징을 이룬다.
조규일 회화가 몇 차례의 변주를 시도하지만 끝까지 변하지 않는 회회적 본질은 빛과 색에 대한 확신이다. 또 하나는 손으로 흙덩이를 만들어 토담을 쌓는 것처럼 지극히 진지하고 정직한 작업 태도다. 회화의 근본에서 흐트러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언제보아도 고결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단순한 구도와 선명한 색채의 필치로 그려지는 풍경은 보는 이들에게 평온하고 서정적인 감흥을 일깨운다. 한국 대자연의 영원한 생명감과 풍부한 변화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실감 있게 표현한 작품 등은 조규일 회화의 백미로 꼽힌다.
국전추천작가로서 국립현대미술관초대작가,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그의 예술세계가 KBS-TV미술관을 통해 방영된 바 있다.
한편, 조규일은 지난 1993년 본인의 작품을 비롯한 모든 소장 작품과 전 재산을 보성군에 기증함으로써 보성군립 백민미술관이 탄생한 것이다. 군립 미술관으로는 최초이며 보성군민을 비롯한 전남 동부지역의 문화센터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전남문화예술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