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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당 현채 白堂 玄采Hyun Chae
1886 ~ 1925
조선·근대
서예
작가약력
- 1886년(고종 23)∼1925년. 사학자·서예가.
작가 소개
호는 백당(白堂). 청년기에 이준(李儁)·전덕기(全德基) 등이 조직한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에 가입하여 계몽운동을 함께 하였다. 안진경체(顔眞卿體)를 잘 쓴 서예가로 알려져 있으며, 개화기 한국사학의 개발과 계몽에 앞장섰다.
학부(學部)에서 번역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역사서를 편집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역사기술의 체제가 정립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적인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학정신(史學精神)은 역사를 통한 문화 회복과 독립국가 성취 등 민족적인 희망에 결부되어 있다.
당시 교과서로 널리 읽혔고 애국심 고취에 크게 기여한 그의『유년필독(幼年必讀)』에서는, 독립에 관하여 “아국(我國)이라 함은 타국(他國)이 있는 연고요, 아신(我身)이라 함은 타인이 있는 연고며, 아(我)의 자유하는 권(權)은 사람마다 상천(上天)이 주신 바라, 타인이 감히 빼앗지 못할 배요. 아국도 또한 그러한지라, 타국의 간섭을 물리쳐, 자주권을 잃지 아니하고 독립하는 실상 힘을 지킨 후에야 아국이라 하나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아국을 보전치 못하고, 아국을 보전치 못하면 아신을 보전치 못하나이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씌어진 그의 저서 『유년필독』·『만국사기(萬國史記)』·『보통교과동국역사(普通敎科東國歷史)』·『중등교과동국사략(中等敎科東國史略)』·『동서양역사(東西洋歷史)』 등은 일제 통감부가 조종하여 강제 실시한 1908년 「교과용도서검정규정」에 따라 이듬해 12월까지 사용금지처분을 받았다. 이는 같은 저자로는 단연 첫째가 되고 있다.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최남선(崔南善) 등과 광문회를 창설, 우리 고전의 발굴·수집과 간행, 보존 및 보급에 힘을 다하였다.
학부(學部)에서 번역하는 일에 종사하면서 역사서를 편집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역사기술의 체제가 정립되어 있지 않음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적인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학정신(史學精神)은 역사를 통한 문화 회복과 독립국가 성취 등 민족적인 희망에 결부되어 있다.
당시 교과서로 널리 읽혔고 애국심 고취에 크게 기여한 그의『유년필독(幼年必讀)』에서는, 독립에 관하여 “아국(我國)이라 함은 타국(他國)이 있는 연고요, 아신(我身)이라 함은 타인이 있는 연고며, 아(我)의 자유하는 권(權)은 사람마다 상천(上天)이 주신 바라, 타인이 감히 빼앗지 못할 배요. 아국도 또한 그러한지라, 타국의 간섭을 물리쳐, 자주권을 잃지 아니하고 독립하는 실상 힘을 지킨 후에야 아국이라 하나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아국을 보전치 못하고, 아국을 보전치 못하면 아신을 보전치 못하나이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씌어진 그의 저서 『유년필독』·『만국사기(萬國史記)』·『보통교과동국역사(普通敎科東國歷史)』·『중등교과동국사략(中等敎科東國史略)』·『동서양역사(東西洋歷史)』 등은 일제 통감부가 조종하여 강제 실시한 1908년 「교과용도서검정규정」에 따라 이듬해 12월까지 사용금지처분을 받았다. 이는 같은 저자로는 단연 첫째가 되고 있다.
1910년 국권이 상실되자 최남선(崔南善) 등과 광문회를 창설, 우리 고전의 발굴·수집과 간행, 보존 및 보급에 힘을 다하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