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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봉 허소 曉峰 許炤Heo So
1882 ~ 1942
근대
서예
작가약력
- 1882(고종 19)~1942.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서예가.
- 미수 허목(眉璟 許穆, 1595~1682)의 서첩으로 필법 공부
- 조선 서화전 2회 특선
작가 소개
전남 보성 출신의 서예가. 자는 남규(南奎)이며 호는 효봉 (曉峰)이다.
새의 발자국 형태 ‘전서’유명하다. 효봉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주위의 칭찬을 받았다. 특히 경서에 밝고 시,서,화에 심취하였다. 또한 신학문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 20대 초반 일본으로 건너가 학문을 익힌 것으로 전해진다.
효봉은 양천 허씨 31세손으로 이며 늙어서는 스스로 담수(더벅머리 노인)라는 이름을 즐겨 쓴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양천 허씨 집안으로 유학자로서 서예가이자 우의정을 지냈던 나주출신의 미수 허목(眉璟 許穆, 1595~1682)의 필법을 스스로 익혔을 뿐 특별한 사사관계는 없다.
그러나 서예에 뛰어난 기량을 보여 조선서화전 2회 특선을 차지한 바 있다. 묵화 산수화에도 능하였으나 특히 전서를 잘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그의 글씨는 새의 발자국과 같은 기이한 서체로서 백수문이 유명하며 당대의 명필가이자 이조판서를 지낸 석촌 운용구도 “압록강 동쪽에서 가히 겨룰 사람이 없겠다”는 말로 효봉의 글씨를 칭찬했다고 한다.
평생을 한거하면서 가야금과 글씨를 즐긴 그는 1942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효봉이 흠모했던 미수는 서예5체에 능하였으나 특히 전서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으며 ‘동방의 제일’이라는 칭찬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효봉이 전서에 뛰어난 것도 미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새의 발자국 형태 ‘전서’유명하다. 효봉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주위의 칭찬을 받았다. 특히 경서에 밝고 시,서,화에 심취하였다. 또한 신학문에 대한 열정도 대단해 20대 초반 일본으로 건너가 학문을 익힌 것으로 전해진다.
효봉은 양천 허씨 31세손으로 이며 늙어서는 스스로 담수(더벅머리 노인)라는 이름을 즐겨 쓴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양천 허씨 집안으로 유학자로서 서예가이자 우의정을 지냈던 나주출신의 미수 허목(眉璟 許穆, 1595~1682)의 필법을 스스로 익혔을 뿐 특별한 사사관계는 없다.
그러나 서예에 뛰어난 기량을 보여 조선서화전 2회 특선을 차지한 바 있다. 묵화 산수화에도 능하였으나 특히 전서를 잘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그의 글씨는 새의 발자국과 같은 기이한 서체로서 백수문이 유명하며 당대의 명필가이자 이조판서를 지낸 석촌 운용구도 “압록강 동쪽에서 가히 겨룰 사람이 없겠다”는 말로 효봉의 글씨를 칭찬했다고 한다.
평생을 한거하면서 가야금과 글씨를 즐긴 그는 1942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편 효봉이 흠모했던 미수는 서예5체에 능하였으나 특히 전서에 뛰어난 기량을 보였으며 ‘동방의 제일’이라는 칭찬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효봉이 전서에 뛰어난 것도 미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전남문화예술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