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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농 허건 南農 許楗Huh Gun
1907 ~ 1987
한국
한국화
작가약력
- 학력
- 1927년 목포상업전수학원 수료
- 기관 경력
- 1945년 조선미술건설본부 동양화 회원
- 1946년 남농연구원 개원
- 1951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 ...
- 1983년 대한민국 예술원 원로회원
- 1984년 영국 캠브리지대 국제저명인사전기에 수록
- 1985년 남농기념관 건립
- 전시
- 1921년, 개인전, 광주
- 1922년-1944년, 조선 미술전람회, 경복궁 미술관
- 1955년, 대한미술전
- 1957년, 백양회전
- 1962~1986년, 개인전 다수
- 1965년, 전남도전, 광주
- 1967년, 한국 현대작가 18인전
- ...
- 1985년, 현대미술 4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6년, 한국 현대미술의 어제와 오늘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6년, 한국화 100년전, 호암갤러리
- 1987년, 예술원 미술분과 회원 작품전, 예술원 미술관
- 등
- 수상
- 1930년-1943년, 조선 미술전람회 입선 총13회
- 1942년, 남화원전 입선
- 1944년, 조선 미술전람회 특선
- ...
- 1976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 1982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 서훈
- 1982년, 목포시민상
- 등
작가 소개
본관은 양천(陽川). 호는 남농(南農). 전라남도 진도에서 출생하였다. 19세기 남종화의 대가인 허련(許鍊)의 손자이며, 직업 화가였던 허형(許瀅)의 아들이다.
화가 집안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나타냈다. 그러나 생활의 빈궁함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목포상업전수학원에 들어가 상업을 공부하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타고난 그림 자질이 발휘되어,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 동양화부에 수묵 담채(水墨淡彩)의 사실적인 풍경화로 입선하였다. 1944년까지 연달아 입선과 특선에 오르면서 전통 화단에 진출하였다. 1940년에 제작된 수묵 채색화 「금강산 보덕굴(普德窟)」과 같은 무렵의 「산촌(山村)」은 광복 전의 대표작이다.
광복 후에는 그 전부터 지니고 있었던 경쾌한 붓놀림과 현실적 감각의 담채(淡彩) 및 농채(濃彩)의 기법으로 전통적인 산수화의 맛과 현실적 시각을 조화시키는 수법으로 시골 풍정을 주제 삼은 「4월 산촌록(山村錄)」(1948년), 「산사(山寺)」(1955년), 「운림동 소견(雲林洞所見)」(1957년)을 그렸다. 그밖에 무한한 향토애가 담긴 계절적인 산수 풍경화를 연작하였다.
1952년부터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 참가하여 추천 작가·초대 작가·심사 위원을 역임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그리고 1957년김기창(金基昶), 이유태(李惟台), 김영기(金永基), 김정현(金正炫), 박내현(朴崍賢), 천경자(千鏡子) 등과 중진 한국화가단체 백양회(白陽會) 창립에 참가하였다. 1970년대 중엽까지 지속된 그 연례 회원 작품전에 출품하였다.
18세 때부터 목포에 정착한 이래 그곳을 떠나지 않은 채 작품 활동을 하였다. 진도 출신으로 1920년대 이후 호남을 대표한 남종화풍의 대가로 광주(光州)에서 활동한 허백련(許百鍊)과 더불어 호남 전통화파의 상징적 고봉(高峯)으로 일컬어진다.
1979년목포 성옥문화상(聲玉文化賞)을 받았으며, 1982년 은관문화훈장 및 목포시민상을 수상하였다. 1983년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에 피선되었다. 그리고 1985년전라남도 무등문화상을 수상하였다.
화가 집안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나타냈다. 그러나 생활의 빈궁함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목포상업전수학원에 들어가 상업을 공부하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타고난 그림 자질이 발휘되어,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 동양화부에 수묵 담채(水墨淡彩)의 사실적인 풍경화로 입선하였다. 1944년까지 연달아 입선과 특선에 오르면서 전통 화단에 진출하였다. 1940년에 제작된 수묵 채색화 「금강산 보덕굴(普德窟)」과 같은 무렵의 「산촌(山村)」은 광복 전의 대표작이다.
광복 후에는 그 전부터 지니고 있었던 경쾌한 붓놀림과 현실적 감각의 담채(淡彩) 및 농채(濃彩)의 기법으로 전통적인 산수화의 맛과 현실적 시각을 조화시키는 수법으로 시골 풍정을 주제 삼은 「4월 산촌록(山村錄)」(1948년), 「산사(山寺)」(1955년), 「운림동 소견(雲林洞所見)」(1957년)을 그렸다. 그밖에 무한한 향토애가 담긴 계절적인 산수 풍경화를 연작하였다.
1952년부터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에 참가하여 추천 작가·초대 작가·심사 위원을 역임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다. 그리고 1957년김기창(金基昶), 이유태(李惟台), 김영기(金永基), 김정현(金正炫), 박내현(朴崍賢), 천경자(千鏡子) 등과 중진 한국화가단체 백양회(白陽會) 창립에 참가하였다. 1970년대 중엽까지 지속된 그 연례 회원 작품전에 출품하였다.
18세 때부터 목포에 정착한 이래 그곳을 떠나지 않은 채 작품 활동을 하였다. 진도 출신으로 1920년대 이후 호남을 대표한 남종화풍의 대가로 광주(光州)에서 활동한 허백련(許百鍊)과 더불어 호남 전통화파의 상징적 고봉(高峯)으로 일컬어진다.
1979년목포 성옥문화상(聲玉文化賞)을 받았으며, 1982년 은관문화훈장 및 목포시민상을 수상하였다. 1983년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에 피선되었다. 그리고 1985년전라남도 무등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