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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탄 한시각 雪灘 韓時覺Han SiGak
1621 ~ ?
조선
한국화
작가약력
- 1621(광해군 13)∼? 조선 후기의 화가.
작가 소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유(子裕), 호는 설탄(雪灘). 화원으로 통정을 지낸 한선국(韓善國)의 아들이며, 사과(司果)를 지낸 한시진(韓時振)의 형이고, 화원 이명욱(李明郁)의 장인이다. 그 역시 화원 출신으로 도화서(圖畵署)의 교수를 지냈다.
화원 가문 출신으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현존하는 작품은 드물지만 도화서 화원으로서 국가적 사업에 다수 참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1651년(효종 2)김명국(金明國) 등 여러 화원과 함께 현종명성후(顯宗明聖后) 가례반차도(嘉禮班次圖) 제작에 참여하였다. 1664년함경도에서 시행된 문무과 별시를 기록한 「북새선은도」와 시험관들의 유람과 시문을 기록한 『북관수창록(北關詶唱錄)』의 실경산수화를 제작하였다. 1655년 통신사행(通信使行)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사행 중 묵죽(墨竹)을 비롯하여 종사관 남용익(南龍翼)의 기행시화첩인 『부상시화첩(扶桑詩畵帖)』을 위하여 그 곳의 실경을 그리기도 하였다. 『고화비고(古畵備考)』에는 그의 묵죽화 두 점이 수록되어 있다.
1681년 북경사행에 수행화원으로 참가하였다. 1682년(숙종 8)에는 송시열(宋時烈)의 초상을 그렸는데, 현존하는 작품은 모사본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는 인물화 및 계화(界畵), 산수에 모두 능하였으며, 특히 도일화원(渡日畵員)이었던 김명국과 마찬가지로 17세기 화단에 감필법(減筆法)으로 처리된 선종화(禪宗畵)를 남기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남긴 「포대도(布袋圖)」 등의 선종화는 그 당시 일본에서 풍미하던 것으로 그의 도일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밖에 함경도에서 특별히 실시되었던 문무양시의 장면을 그린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는 인물과 건물의 묘사가 정확하고 활달하여 그의 사실적인 표현력을 보여준다.
화원 가문 출신으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현존하는 작품은 드물지만 도화서 화원으로서 국가적 사업에 다수 참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1651년(효종 2)김명국(金明國) 등 여러 화원과 함께 현종명성후(顯宗明聖后) 가례반차도(嘉禮班次圖) 제작에 참여하였다. 1664년함경도에서 시행된 문무과 별시를 기록한 「북새선은도」와 시험관들의 유람과 시문을 기록한 『북관수창록(北關詶唱錄)』의 실경산수화를 제작하였다. 1655년 통신사행(通信使行)의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사행 중 묵죽(墨竹)을 비롯하여 종사관 남용익(南龍翼)의 기행시화첩인 『부상시화첩(扶桑詩畵帖)』을 위하여 그 곳의 실경을 그리기도 하였다. 『고화비고(古畵備考)』에는 그의 묵죽화 두 점이 수록되어 있다.
1681년 북경사행에 수행화원으로 참가하였다. 1682년(숙종 8)에는 송시열(宋時烈)의 초상을 그렸는데, 현존하는 작품은 모사본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는 인물화 및 계화(界畵), 산수에 모두 능하였으며, 특히 도일화원(渡日畵員)이었던 김명국과 마찬가지로 17세기 화단에 감필법(減筆法)으로 처리된 선종화(禪宗畵)를 남기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그가 남긴 「포대도(布袋圖)」 등의 선종화는 그 당시 일본에서 풍미하던 것으로 그의 도일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밖에 함경도에서 특별히 실시되었던 문무양시의 장면을 그린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는 인물과 건물의 묘사가 정확하고 활달하여 그의 사실적인 표현력을 보여준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