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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림 崔榮林Choi YoungRim
1916 ~ 1985
한국
서양화·판화
작가약력
- 학력
- 1940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중퇴
- 기관 경력
- 1945년 평양 숭의여자중학교 미술교사
- 1952년 마산상업고등학교, 성지여자고등학교 미술교사
- 1956년 광성중학교 미술교사
- 1957년 창작미협 창설위원
- 1958년-1960년 이화여자대학교 가정과, 미술과 강사
- ...
- 1970년 제1회 한국 미술대상전 심사위원
- 1975년 제1회 공간 미술대상전 심사위원
- 1977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심사분과 위원장
- 1978년 중앙 미술대전 추천위원
- 창작미협 창립회원
- 구상전 회원
- 등 역임
- 전시
- 1940년-1944년, 주호회전
- 1940년, 일본판화협회전, 동경
- 1952년, 월남 미술인전, 부산
- 1952년, 3.1 기념미술전, 마산
- 1952년, 8.15 광복절 기념 미술전, 마산
- 1953년, 제5회 대한미술협회전
- 1954년-1984년, 개인전(국내/국외, 10여회)
- ...
- 1980년, 한국서양화 6인전, 뉴욕 한국문화원
- 1982년, 개관기념초대전, 여의도 미술관
- 1982년, 한-중 현대 서화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3년, KBS 초대 미술전, 국립현대미술관
- 1983년, 국전 출신작가회전, 미술회관
- 1983년, 한국 현대미술전, 밀라노
- 1985년, 유작전, 국제 화랑
- ...
- 2000년, 한국의 미감(美感)전, 예 화랑
- 2000년, 한국 현대미술의 시원, 국립현대미술관
- 2001년, 조선 화랑 개관 30주년- 70년대 회화정신전, 조선 화랑
- 2001년, 70년대 회화정신전, 조선 화랑
- 2002년, 유작전, 가나아트센터
- 2005년, 유작전, 중앙 갤러리
- 등 전시
- 수상
- 1934년, 일본판화협회전 입선
- 1935년, 조선 미술전람회 입선
- 1940년, 일본판화가협회 입선
- 1955년-1958년, 제5회-8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입선
- 1959년, 제8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문교부장관상
- 1960년, 제9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특선
- 1972년, 제21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초대작가상
작가 소개
본관은 전주(全州). 평양에서 부유한 한약국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양 광성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이던 1935년 조선미술전람회(약칭 鮮展)에 유화로 첫 입선한 뒤 1943년까지 수차 입선을 거듭하여 화단에 진출하였다.
1938년에 동경(東京)에 가서 한때 태평양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고, 판화가 무나가타(棟方志功)에게 개인적으로 목판화 기법을 사사하기도 하였다.
평양에서 조국 광복을 맞이하여 공산치하에서 표현의 자유를 구속받다가 6·25전쟁 때 남한으로 탈출, 1955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國展)에 참가하여 추천작가·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지냈다.
1957년 창작미술협회 창립, 1967년 구상전(具象展) 창립에 참여하였다. 1960년부터는 대학에도 출강, 1981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정년퇴임하였다.
작품에서는 남하 직후의 고뇌어린 인물상으로부터 추상·반추상의 상징적 구성작업인 ‘흑색시대’(1950년대 후반)를 거쳐 황토색 주조에 흙모래까지 도입한 토속적인 화면 질감에 우리의 민담(民譚)·전설과 「심청전」·「장화홍련전」등의 이야기를 민족적 애정으로 연작한 ‘설화시대’로 이어졌다. 화면에 등장하는 여인과 어린이들의 해학적인 변용과 자유로운 형상 등은 특이한 창조적 내면이다. 1973년에 국전 초대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최영림의 작업은 1950년대 흑백의 단조로운 색채를 기조로 큐빅 형태를 추구한 시기와 1960년대의 독특한 질감으로 한국적인 설화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전개한 시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흑색시대’로 불리는 1950년대의 작품들은 흑과 백을 긴장된 대비로 결부시켜 우울한 애조와 비극적인 환상이 엇갈리는 무거운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평면적인 처리로 인한 추상에 가까운 요약된 기법이 돋보인다. 1960년을 전후한 ‘황토색 시대’ 작품의 특징은 한국의 토속적 정감을 자아내는 황토색이 화면을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이를 물질적으로 더욱 강조하기 위해 직접 황토 흙 모래를 화면에 바른다. 최영림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스케치나 에스키스를 하지 않았다. 그는 캔버스에 흙분(土粉)을 발라놓고 흙이 발라진 모양을 들여다보면 어떤 형체가 구체화되어 간다고 말한 바 있다.
1938년에 동경(東京)에 가서 한때 태평양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고, 판화가 무나가타(棟方志功)에게 개인적으로 목판화 기법을 사사하기도 하였다.
평양에서 조국 광복을 맞이하여 공산치하에서 표현의 자유를 구속받다가 6·25전쟁 때 남한으로 탈출, 1955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國展)에 참가하여 추천작가·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지냈다.
1957년 창작미술협회 창립, 1967년 구상전(具象展) 창립에 참여하였다. 1960년부터는 대학에도 출강, 1981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정년퇴임하였다.
작품에서는 남하 직후의 고뇌어린 인물상으로부터 추상·반추상의 상징적 구성작업인 ‘흑색시대’(1950년대 후반)를 거쳐 황토색 주조에 흙모래까지 도입한 토속적인 화면 질감에 우리의 민담(民譚)·전설과 「심청전」·「장화홍련전」등의 이야기를 민족적 애정으로 연작한 ‘설화시대’로 이어졌다. 화면에 등장하는 여인과 어린이들의 해학적인 변용과 자유로운 형상 등은 특이한 창조적 내면이다. 1973년에 국전 초대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최영림의 작업은 1950년대 흑백의 단조로운 색채를 기조로 큐빅 형태를 추구한 시기와 1960년대의 독특한 질감으로 한국적인 설화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전개한 시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흑색시대’로 불리는 1950년대의 작품들은 흑과 백을 긴장된 대비로 결부시켜 우울한 애조와 비극적인 환상이 엇갈리는 무거운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평면적인 처리로 인한 추상에 가까운 요약된 기법이 돋보인다. 1960년을 전후한 ‘황토색 시대’ 작품의 특징은 한국의 토속적 정감을 자아내는 황토색이 화면을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이를 물질적으로 더욱 강조하기 위해 직접 황토 흙 모래를 화면에 바른다. 최영림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스케치나 에스키스를 하지 않았다. 그는 캔버스에 흙분(土粉)을 발라놓고 흙이 발라진 모양을 들여다보면 어떤 형체가 구체화되어 간다고 말한 바 있다.
출처/월간미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