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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소 주경 泰素 朱慶Chu Kyung
1905 ~ 1979
근대·현대
서양화
작가약력
- 학력
- 1941년 일본 동경제국 미술학교 학사
- 기관 경력
- 1930년-1934년 한국미술 학우회 회장
- 1932년-1934년 동경 조선미술 학우회 창립회장
- 1935년-1943년 백우회 조직, 회장
- 1942년 대구 계성학교 미술교사
- 1945년 조선건국위원회 경북미술부 조직
- 1946년 경주여중 교장(중등미술교원양성소 주재), 학무국 장학관 역임
- 1949년 문화총연맹 서울지부장
- 1950년 대구 미국공보원 원장
- 1951년 국제연합회 한국지부 이사
- 1954년 국무총리, 외무부장관 비서관 역임
- 1955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 1958년 경북문화단체 최고위원(미협 이사장)
- 1962년-1971년 한국미협 경북지부장, 경북미술학원 창설
- 1964년 학원연합회 예술분과위원장
- 1965년-1970년 가톨릭 미술협회 회장
- 1966년-1976년 중등교원 미술협회 고문
- 1973년 영남대학교 사범대학교 미술학부 강사
- 1974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추천작가, 경북도전 초대작가 위촉
- 전시
- 1925년, 제1회 YMCA 미술연구소 뎃상연구 전람회
- 1930년, 칠조회, 동경
- 1930년-1932년, 자유미협, 동경
- 1935년-1943년, 백유회 조직 및 출품, 동경
- 1938년-1940년, 제18-20회 조선 미술전람회, 경성
- 1938년-1939년, 제1-2회 재동경미술협회전, 화신화랑
- 1945년, 해방기념전
- 1951년-1954년, 대구 화우회전, 대구미공보원
- 1955년, 제 2회 서울 백우회전, 덕수궁 미술관
- 1962년, 제 2회 신라 문화재 기념전, 동명각
- 1965년-1970년, 가톨릭미술가협회, 미공보원
- 1968년, 신문화 60주년 기념 초창기 작가전, 예총 화랑
- 1970년, 경북 중견작가 초대전, 아후스 화랑
- 1972년, 한국 근대미술 60년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3년, 영남대 교수전, 대구
- 1974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4년, 원로작가 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4년, 개인전, 예술진흥원 미술회관
- 1975년, 초대전, 한일 화랑
- 1975년, 지방작가전, 미술회관
- 1976년, 초대전, 마산 화랑
- 1976년, 경북도전 초대작가전, 이목 화랑
- 1976년, 중견작가전, 백향 화랑
- 1976년, 개인전, 맥향 화랑
- 1977년, 한국 현대서양화 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8년, 한국미술 20년 동향전
- 1978년, 형상전
- 수상
- 1938년, 재동경미술협회전 입선
- 1938년-1940년, 조선 미술전람회 입선
- 1972년, 전국예술인대회 미술공로상
작가 소개
본명은 재경(載慶). 호는 태소(泰素). 서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고희동(高羲東)과 이종우(李鍾禹)에게 데생 및 유화기법을 지도받았다. 1928년 일본에 건너가 14년간 머물며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와 데이코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를 졸업하였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이전부터 간행되던 미술잡지 등을 통하여 파리 중심의 새로운 서양미술 조류를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집안의 큰 재난을 보고 절망한 심정을 표현한 1923년작 「파란」은 한국 서양화사에서 최초의 추상화로 간주되는 작품이다. 주경은 미래파적인 경향을 보이는 「파란」과 앵포르멜의 전조로 일컬어지는 「생존」(1930) 등을 통해 순수 추상화를 시도함으로써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주경은 당시 국내의 서양화가들이나 일본의 데이코쿠미술학교와 도쿄미술학교 출신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대개의 작품은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적인 작품경향을 띠었다. 일본 유학시절에도 오랜 기간 데생을 연구하였고 2년간 조각수업을 받기도 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에는 회화와 조각을 함께 출품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19세기말 20세기 초의 다양한 서구미술사조를 실험하고 모색하였다.
일본 유학시절인 1932년 ‘동경 조선미술학우회’를 창립한 뒤 1934년까지 회장을 역임했고 1935년에는 재동경유학생의 모임인 ‘백우회’를 조직하였다. 귀국 후에는 대구에 정착하여 대구 계성학교 미술교사(1942), 대구 미국문화원 원장(1950), 한국미술협회 경상북도지부장(1962∼1971) 등을 역임하면서 미술행정가이자 미술교육가로서 활약하였다. 특히 대구에 정착하여 대구 지역의 서양화단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74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로 추대되어 1978년까지 사실적인 자연풍경과 꽃 등의 정물화를 해마다 출품하며, 만년의 창작열정을 쏟았다. 대표작으로 「파란」(1924), 「생존」(1930), 「붉은색 배경의 나부(裸婦)」(1940) 등이 있다.
2006년 주경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주경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추상회화 《파란(波瀾)》을 보면 일찍이 추상회화에 눈 뜬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시기가 10대 후반이고 국내에 본격적으로 추상미술이 소개되기 이전인 점을 고려할 때, 조사연구의 여지가 있다. 또 1930년의 《생존》과 1959년의 《경음악》을 통해 오르피즘적 경향의 음악적 율동이 구성주의적 방식으로 결합된 추상세계를 볼 수 있으나 나머지 대부분의 작품은 전통적인 구상회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는 자연의 객관적 진실을 외형적으로 추구하는 사실주의 화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자연 속에 오묘한 미의 세계가 내재하며, 화가는 그 내재된 미를 관찰하고 감득하여 그것을 조형화하고 보편화 시키는 것으로 그가 맡은 사명을 다한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이전부터 간행되던 미술잡지 등을 통하여 파리 중심의 새로운 서양미술 조류를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집안의 큰 재난을 보고 절망한 심정을 표현한 1923년작 「파란」은 한국 서양화사에서 최초의 추상화로 간주되는 작품이다. 주경은 미래파적인 경향을 보이는 「파란」과 앵포르멜의 전조로 일컬어지는 「생존」(1930) 등을 통해 순수 추상화를 시도함으로써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주경은 당시 국내의 서양화가들이나 일본의 데이코쿠미술학교와 도쿄미술학교 출신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대개의 작품은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적인 작품경향을 띠었다. 일본 유학시절에도 오랜 기간 데생을 연구하였고 2년간 조각수업을 받기도 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에는 회화와 조각을 함께 출품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19세기말 20세기 초의 다양한 서구미술사조를 실험하고 모색하였다.
일본 유학시절인 1932년 ‘동경 조선미술학우회’를 창립한 뒤 1934년까지 회장을 역임했고 1935년에는 재동경유학생의 모임인 ‘백우회’를 조직하였다. 귀국 후에는 대구에 정착하여 대구 계성학교 미술교사(1942), 대구 미국문화원 원장(1950), 한국미술협회 경상북도지부장(1962∼1971) 등을 역임하면서 미술행정가이자 미술교육가로서 활약하였다. 특히 대구에 정착하여 대구 지역의 서양화단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1974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로 추대되어 1978년까지 사실적인 자연풍경과 꽃 등의 정물화를 해마다 출품하며, 만년의 창작열정을 쏟았다. 대표작으로 「파란」(1924), 「생존」(1930), 「붉은색 배경의 나부(裸婦)」(1940) 등이 있다.
2006년 주경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주경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추상회화 《파란(波瀾)》을 보면 일찍이 추상회화에 눈 뜬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시기가 10대 후반이고 국내에 본격적으로 추상미술이 소개되기 이전인 점을 고려할 때, 조사연구의 여지가 있다. 또 1930년의 《생존》과 1959년의 《경음악》을 통해 오르피즘적 경향의 음악적 율동이 구성주의적 방식으로 결합된 추상세계를 볼 수 있으나 나머지 대부분의 작품은 전통적인 구상회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는 자연의 객관적 진실을 외형적으로 추구하는 사실주의 화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자연 속에 오묘한 미의 세계가 내재하며, 화가는 그 내재된 미를 관찰하고 감득하여 그것을 조형화하고 보편화 시키는 것으로 그가 맡은 사명을 다한다고 보는 것이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두산백과, 국립현대미술관,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