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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조방원 雅山 趙邦元Jo BangWon
1926 ~ 2014
한국
한국화
작가약력
- 1926년 전남 신안 출생
- 1945년 남농 허건 문하 입문
- 1953-54년 국전 입선(欲雨)
- 1955-58년 국전 특선(朝)
- 1958년 전남도문화상 수상
- 1959년 국전 추천작가
- 1963년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 1968년 남도 국악원 설립
- 1970년 국전 심사위원
- 1973년 한국현역작가 100인전 초대(국립현대미술관)
- 1976년 한국현대동양화대전(국립현대미술관)
- 1977년 제 1회 개인전(부산 원화랑)
- 1979년 개인 작품전(서울 세종문화회관)
- 1982년 임방울 선생 국악테잎 제작 배포 / 개인 작품전(롯데미술관)
- 1985년 동아미술제 심사위원
- 1986년 재단법인 아산미술문화재단 설립
- 1987년 한국현대미술 어제와 오늘전 초대(국립현대미술관) / 87한국현대미술초대(국립현대미술관)
- 1988년 소장품 6,803점 전남도에 기증
- 1991년 무등문화상 수상 / 묵노회전 (제자 모임)
- 1995년 곡성 연화리 작업실 칩거
- 1998년 대한민국 원로작가 초대전(서울시립미술관) / 대한민국문화훈장 보관장 수상
- 2000년 광주시립미술관 초대전
- 2014년 별세
작가 소개
전남 신안 지도 출신의 한국화가. 호는 아산(雅山), 한때 스스로를 낮춰 아산(啞山)이라는 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20대 초반에 남농 문하에 들어 국전 4,5.6,7회 특선으로 추천, 초대작가 지정을 받았으며 국전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우리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 남도국악원을 설립하기도 했으며 임방울선생 국악 테이프를 제작, 배포하기도 했다. 노년에는 자신이 평생 수십한 많은 간찰과 회화 등을 전남도에 기증, 전남도립 옥과미술관(현 아산조방원 미술관)건립의 기초를 닦았다.
아산 조방원은 색채의 현란함을 떨쳐버리고 유현(幽玄)한 내면의 깊이를 추구하는 작가다. 먹색하나로 다양한 자연의 색과 형상을 그려내 ‘먹 산수’의 대가로 불린다. 그는 평생을 그림을 그려왔지만 작품세계의 변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 즉 그림의 깊이를 변화시켜 왔다는 얘기다.
특히 풍수에 관심을 두면서 그의 산은 ‘천지의 뼈대’로서 인식되고 있으며 나무는 남도판소리 ‘쑥대머리’를 형상화 한 듯한 모양새로서 차별성으로 갖는다. 그는 작품 속에 산사나 민가를 배치할 때도 풍수를 따진다. 그가 사경(寫景)이 아닌 사의(寫意)를 표현하는 작가임을 증명한다.
그런 점에서는 아산의 작품은 철저히 남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투박한 서민적 정서와 남도적인 서정이 짙게 깔려 있다. 오랫동안의 작품의 소재였던 풍속화도 남도의 풍속과 맞닿아 있으며 나무의 형태도 남도의 장승을 형상화 한 것이다. 다만 먹색이 채색의 총화라고 믿는 작가는 먹의 조화와 운필을 통해 자신의 화의를 드러낸다. 즉, 80년대는 어둡고 강한 먹색으로 암울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필선이 강하고 두꺼워진 것은 생명에의 의지를 번영한 것이다.
조방원은 묵 하나에서 동양적 신비를 캐고 있으며 먹의 조화에서 이뤄지는 일필일획의 대담한 터치와 운필은 풍부한 설화와 자연에 대한 깊은 미의식으로 하여 유현미를 촉발시켜 준다. 두텁고 넓으며 멀고 가까우며 높고 낮음이 있으며, 맺고 풀어헤치는 자유분방한 먹감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선미와 문기가 가득한 수묵화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경지를 일러 선종의 무념무상으로까지 얘기된다. 대표작의 하나로 불리는 ‘관폭도’ ‘비정’은 이러한 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 작품으로 인생이 무엇이고 자연이 무엇인가를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청아촌이라고 하여 청당과 아산, 도촌 등 남농의 3대 제자로 불리는 그는 일찍부터 스승과는 다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는데 1955년 제 4회 국전 문교부장관상 수상작 ‘효(曉)’도 소재와 기법에서 남농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아산일가를 이룬 셈이다.
1990년 대 후반 들어 곡성군 화장산(華藏山) 아래 연화리에 화실을 짓고 칩거하면서 화혼을 불태우고 있는데 노년 작들은 탈속의 경지를 보이면서 전통수묵산수의 경계를 넘어 현대성을 획득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평이다.
20대 초반에 남농 문하에 들어 국전 4,5.6,7회 특선으로 추천, 초대작가 지정을 받았으며 국전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우리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 남도국악원을 설립하기도 했으며 임방울선생 국악 테이프를 제작, 배포하기도 했다. 노년에는 자신이 평생 수십한 많은 간찰과 회화 등을 전남도에 기증, 전남도립 옥과미술관(현 아산조방원 미술관)건립의 기초를 닦았다.
아산 조방원은 색채의 현란함을 떨쳐버리고 유현(幽玄)한 내면의 깊이를 추구하는 작가다. 먹색하나로 다양한 자연의 색과 형상을 그려내 ‘먹 산수’의 대가로 불린다. 그는 평생을 그림을 그려왔지만 작품세계의 변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 즉 그림의 깊이를 변화시켜 왔다는 얘기다.
특히 풍수에 관심을 두면서 그의 산은 ‘천지의 뼈대’로서 인식되고 있으며 나무는 남도판소리 ‘쑥대머리’를 형상화 한 듯한 모양새로서 차별성으로 갖는다. 그는 작품 속에 산사나 민가를 배치할 때도 풍수를 따진다. 그가 사경(寫景)이 아닌 사의(寫意)를 표현하는 작가임을 증명한다.
그런 점에서는 아산의 작품은 철저히 남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투박한 서민적 정서와 남도적인 서정이 짙게 깔려 있다. 오랫동안의 작품의 소재였던 풍속화도 남도의 풍속과 맞닿아 있으며 나무의 형태도 남도의 장승을 형상화 한 것이다. 다만 먹색이 채색의 총화라고 믿는 작가는 먹의 조화와 운필을 통해 자신의 화의를 드러낸다. 즉, 80년대는 어둡고 강한 먹색으로 암울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필선이 강하고 두꺼워진 것은 생명에의 의지를 번영한 것이다.
조방원은 묵 하나에서 동양적 신비를 캐고 있으며 먹의 조화에서 이뤄지는 일필일획의 대담한 터치와 운필은 풍부한 설화와 자연에 대한 깊은 미의식으로 하여 유현미를 촉발시켜 준다. 두텁고 넓으며 멀고 가까우며 높고 낮음이 있으며, 맺고 풀어헤치는 자유분방한 먹감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선미와 문기가 가득한 수묵화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경지를 일러 선종의 무념무상으로까지 얘기된다. 대표작의 하나로 불리는 ‘관폭도’ ‘비정’은 이러한 세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 작품으로 인생이 무엇이고 자연이 무엇인가를 감동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청아촌이라고 하여 청당과 아산, 도촌 등 남농의 3대 제자로 불리는 그는 일찍부터 스승과는 다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는데 1955년 제 4회 국전 문교부장관상 수상작 ‘효(曉)’도 소재와 기법에서 남농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아산일가를 이룬 셈이다.
1990년 대 후반 들어 곡성군 화장산(華藏山) 아래 연화리에 화실을 짓고 칩거하면서 화혼을 불태우고 있는데 노년 작들은 탈속의 경지를 보이면서 전통수묵산수의 경계를 넘어 현대성을 획득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평이다.
출처/전남문화예술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