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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 장우성 月田 張遇聖Jang WooSeong
1912 ~ 2005
한국
한국화
작가약력
- 1912∼2005. 한국 근현대 동양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작가 소개
호는 월전(月田). 1912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하였으며, 2세 때 경기도 여주로 이주하여 김은호의 제자로 채색 공필 화법을 배우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 전통 수묵화의 발전을 도모하며 수묵의 사의성이 강조된 신문인화 운동을 이끌며 현대적이며 한국적인 수묵화를 창조하였다.
1912년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외사리에서 출생하였고 1930년에는 이당김은호(金殷鎬)의 화숙(畵塾)인 낙청헌에서 동양화 실기를 습득하는 한편, 육교 한어학원에서 한자를, 김돈희(金敦熙) 서숙인 상서회에서 서예를 익혔다.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로부터 1944년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수상하였다. 1936년에는 백윤문, 김기창, 한유동, 조중현, 이석호, 이유태 등과 함께 이당 화숙인 후소회의 창립회원이 되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조선미술건설본부 위원이 되었으며 1946년배렴, 이응노, 김영기, 이유태, 김중현 등과 더불어 동양화의 쇄신을 목적으로 단구 미술원을 조직하였다. 1946년부터 1961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49년 국전이 창설되자 초대작가, 심사위원으로 되었으며 1981년까지 국전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1951년 종군화가로 중부전선에 종군하였으며 1953년에는 이충무공 기념사업 회의 위촉으로 제작한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1981년까지 김유신, 권율, 정약용, 강감찬, 윤봉길, 정몽주 등의 영정을 제작하였다.
1961년에는 서울대학교 미술대를 사직하고 1963년미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에서 개인전을 가지고 동양예술학원을 개설, 실기와 동양미술을 지도, 강의하였다. 그리고 1966년 3년 여의 미국 체류를 끝내고 귀국하였다. 1971년부터 1974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1973년에는 일본 동경 송옥(松屋)백화점 화랑에서, 1980년에는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파리의 세르뉘쉬 미술관에서, 1982년에는 독일 쾰른시립미술관에 초대 개인전을 가졌다. 1974년에는 세종대왕 기념관에 「집현전학사도」를, 1975년에는 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를 제작하였다. 1989년에는 월전미술문화재단 설립하고 1991년 4월에는 월전미술관을 개관하고 동방예술연구회를 조직하였다. 2005년 2월 28일 사망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 입상작으로는 「해빈소견(海濱所見)」(제11회, 1932, 입선), 「신장」(제13회, 1934년, 입선), 「요락(搖洛)」(제15회, 1936년, 입선), 「승무」(제16회, 1937년, 입선), 「연춘(軟春)」(제17회, 1938년, 입선), 「모습(姿)」(제19회, 1940년, 입선), 「푸른 전복」(제20회, 1941년, 특선), 「청춘일기」(제21회, 1942년, 특선. 창덕궁상 수상), 「화실」(제22회, 1943년, 특선), 「기도(祝壽)」(제23회, 1944년, 특선) 등이 있다.
1959년에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960년 대한민국 홍조소성(紅條素星) 훈장을, 1976년에는 문화훈장을 받았다. 1995년에 원광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수여받았다.
1912년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외사리에서 출생하였고 1930년에는 이당김은호(金殷鎬)의 화숙(畵塾)인 낙청헌에서 동양화 실기를 습득하는 한편, 육교 한어학원에서 한자를, 김돈희(金敦熙) 서숙인 상서회에서 서예를 익혔다.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로부터 1944년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수상하였다. 1936년에는 백윤문, 김기창, 한유동, 조중현, 이석호, 이유태 등과 함께 이당 화숙인 후소회의 창립회원이 되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조선미술건설본부 위원이 되었으며 1946년배렴, 이응노, 김영기, 이유태, 김중현 등과 더불어 동양화의 쇄신을 목적으로 단구 미술원을 조직하였다. 1946년부터 1961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49년 국전이 창설되자 초대작가, 심사위원으로 되었으며 1981년까지 국전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1951년 종군화가로 중부전선에 종군하였으며 1953년에는 이충무공 기념사업 회의 위촉으로 제작한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1981년까지 김유신, 권율, 정약용, 강감찬, 윤봉길, 정몽주 등의 영정을 제작하였다.
1961년에는 서울대학교 미술대를 사직하고 1963년미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에서 개인전을 가지고 동양예술학원을 개설, 실기와 동양미술을 지도, 강의하였다. 그리고 1966년 3년 여의 미국 체류를 끝내고 귀국하였다. 1971년부터 1974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1973년에는 일본 동경 송옥(松屋)백화점 화랑에서, 1980년에는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파리의 세르뉘쉬 미술관에서, 1982년에는 독일 쾰른시립미술관에 초대 개인전을 가졌다. 1974년에는 세종대왕 기념관에 「집현전학사도」를, 1975년에는 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를 제작하였다. 1989년에는 월전미술문화재단 설립하고 1991년 4월에는 월전미술관을 개관하고 동방예술연구회를 조직하였다. 2005년 2월 28일 사망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 입상작으로는 「해빈소견(海濱所見)」(제11회, 1932, 입선), 「신장」(제13회, 1934년, 입선), 「요락(搖洛)」(제15회, 1936년, 입선), 「승무」(제16회, 1937년, 입선), 「연춘(軟春)」(제17회, 1938년, 입선), 「모습(姿)」(제19회, 1940년, 입선), 「푸른 전복」(제20회, 1941년, 특선), 「청춘일기」(제21회, 1942년, 특선. 창덕궁상 수상), 「화실」(제22회, 1943년, 특선), 「기도(祝壽)」(제23회, 1944년, 특선) 등이 있다.
1959년에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960년 대한민국 홍조소성(紅條素星) 훈장을, 1976년에는 문화훈장을 받았다. 1995년에 원광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수여받았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