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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근 張宇根
1873 ~ ?
한국
작가약력
작가 소개
1873년(고종 10) 3월 16일∼미상. 일제 강점기 관료‧교육가.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본적은 경성부(京城府:현 서울) 동대문외(東大門外) 신설리(新設里)이다.
1896년(건양 1) 동경(東京)경찰감옥학교를 졸업한 뒤 1905년(광무 9) 함경북도 변계경무서 총순, 1906년(광무 10) 경무관을 지냈다. 경무관 재직 시에는 홍주의병을 진압하는 현지파견대로 활동하였다. 1907년(융희 1) 중추원부찬의로, 1908년(융희 2) 경시청 경시로 활동하는 한편 평안남도 경무부와 평양경찰서에서 근무하였다. 1909년(융희 3) 평안남도 순사교습소 교관을 겸임하였고, 같은 해 6월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서순기념장(西巡記念章)을 받았다.
1910년(융희 4) 조선총독부 경시가 되어 약 2년간 활동하였고, 일본적십자사 정사원‧통감부 경시를 차례로 지냈다. 같은 해 대한제국으로부터 훈5등 팔괘장을 받았고, 정8위에 서위되었다. 1912년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이후 만주 철령(鐵嶺)으로 이주하여 재만조선인사회와 교육계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1917년 철령역(鐵嶺驛) 앞에 있는 만철(滿鐵) 창고를 빌려 철령육영학교(鐵嶺育英學校)를 창립하고 초대 교장에 취임하였다. 1918년 철령조선인회 고문을 역임하였다. 1920년 봉천육영학교를 설립하였고 교장에 취임하였고, 1922년 개원(開原)보통학교, 1923년 신경보통학교, 1926년 영구(營口)보통학교 건립에 참여하였다. 그 외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촉탁을 지냈고, 철령일본영사관으로부터 제2회 국세조사참여원에 위촉되었다.
1931년 피난민지도위원회(避難民指導委員會) 위원장이 되어 만주사변(滿洲事變) 발발로 인한 피난민 구제활동을 하였고, 이후 철령조선인민회(鐵嶺朝鮮人民會) 회장을 지냈다. 1934년 만주국건국공로장 수여자로 상신되었으며, 1935년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 기념표창을 받았다. 같은 해 전만조선인민회연합회 결의로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에 추천되었다.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