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상세 설명
백수남하면, 우선 먼저 구슬들이 떠오른다. 알알이 탱글탱글한 구슬들이 화면 가득 빽빽이 채우다 못해, 금방이라도 화면 밖으로 튕겨나와 우르르 쏟아질 것 같거나, 혹은 화면의 표면에서 몇 개의 구슬들이 성좌의 형태로 자전하거나 공전하는 것 같다. 다니엘 뷔렌의 모티브 ‘8.7 cm 스트라이프’나 끌로드 비알라의 강낭콩 닮은 모티브처럼 전적인 우연의 개입에 맡겨 이뤄진 것도 있지만, 백수남의 모티브는 무한한 상징을 구슬마다 알알이 담고 있다. 마치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서처럼, 백수남의 ‘구슬 유희’에도 천문학적 구성, 우주적 조화, 아사달의 리듬, 도교적 사상 등이 담겨있다.
“경주 고분 발굴에서 봤던 구슬에서 영생을 느꼈어요. 알에서 볼 수 있듯이 생명의 형태는 둥글고, 생명의 색깔은 초록빛이라고 생각해요. 구슬 그 자체가 바로 구체적인 생명의 형태이다. 이것은 바로 생명의 근원인 우주의 모양 그것이기도 하다. 영원히 변치않는 신비한 광채를 지닌 영롱한 구슬은 영생의 상징이다. 아사달인들의 고분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곡옥, 벽옥들은 사자의 영생을 향한 아사달인들의 강력한 염원이 담긴 제물이다.”
- 작가의 말 中에서
그의 가장 인상적이며 대표적인 작품은 (神市 阿斯達) 연작이다. 구슬이 그의 기본적인 모티브라면, 그의 꾸준한 그림 주제는 '신시 아사달' 의 우주관이다. 고대설화 속 아사달인들의 우주관과 철학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에게 아사달은 한국의 우주관 혹은 한국의 정신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항상 내 작품의 소재를 한국 고대 아사달인들의 우주관 속에서 찾는다. 아사달이란 문헌상에 나타난 한국 최초의 수도이름이다. 이에 나는 고대의 한국인들을 통칭 아사달인이라고 부른다. […] 아사달인의 생명은 영롱한 구슬로 표현된다.”
- 작가의 말 中에서
작가는 고대 아사달인들의 상상력과 세계가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벽화의 그림을 재현했다. 우리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될 때 실락인(失樂人)이 된 것이 아니라, 니체가 의미하는 ‘신의 사망선고’로 인해 모두 실락인이 되었다. 여기서 ‘신’(神)이라는 것은 신적이며 우주적 시각 (감각)을 말함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마음속에 거주했던 신적이며 우주적인 관점을 잊었다는 의미다. 고대 그리스 인들이나 로마인들은 신들과 대화하며 복종하기도 때로는 저항하기도 하며 신적인 호기, 담대함, 광대함을 품고 살았다. 이는 아사달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처럼 멀리 느껴졌던 아사달적인 우주적 정신과 고구려의 기상을 예술을 통해 우리 가까이로 소환하고 있다. 아사달인들과 고구려인들의 DNA가 우리에게도 유전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신시(神市)의 구성요소가 여전히 한국에 남아있음을 알리고 있다. 아사달인들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의 작품은 일상의 삶에 지쳐 용기와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또한 우주와 영원과의 대화의 맥을 놓쳐버린 디지털인들에게 ‘신의 도시’(神市)로 이주해 오라는 초대장이다.
작가 소개
우주의 근원과 인간생명의 심오한 세계를 초현실기법으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백수남은 한국화단에서 거의 주목 받지 못했지만 국내화단에서 초현실주의 계열의 극사실주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신시와 아사달을 주제로 우주와 인간의 경계, 생과 사의 경계를 신비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동양정신과 주제를 서양의 극사실을 바탕으로 초현실주의 양식에 결합시킨 것이다.